형성과 참여

오늘날 기독교 공동체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급박한 과제 중 하나는, 성경을 자기 주권적인 목적을 위해서 사용하는 태도를 버리고, 그 성경을 철저히 살아내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단언함으로써 그러한 자기 주권성에 대항 하는 것이다.

언어의 본질은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형성하는 것이다.
언어는 최선의 상태에서 인격적이 되고 계시의 특성을 띤다. 그리고 계시는 언제나 무엇인가를 형성한다. 무엇인가를 더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언어를 잘 사용하는 사람들, 시인과 연인들 그리고 아이들과 성자들을 보라 그들의 언어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형성한다. 그들은 친밀함을 만들어 내고, 인품을 만들어 내고,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고, 선을 만들어 내고, 진리를 만들어 낸다.

성경의 저자는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위격을 통해 삼위일체적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알려 주시기 보다 자기 자신을 보여 주신 것이다, 계시하신 것이다. 성경의 권위는 권위있는 하나님의 임재로 부터 직접 일어나는 것이지 비인격적인 사실이나 진실들의 집합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인격적으로 전달된 계시이다. 이 계시는 우리를 어떤 일에 참여시키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으로서 사는 것의 의미를 인격대 인격으로 알려준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모든 읽기/듣기는 인격적, 관계적, 참여적 읽기/듣기를 요구한다. 저자와 독자는 모두 포괄적인 존재이며 인격적으로 참여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성경은 인격적으로 다가오시는 성부, 성자, 성령의 자리를 나의 거룩한 욕구, 나의 거룩한 필요, 나의 거룩한 느낌이라는 매우 개인화된 삼위일체로 대체해 버렸다.
나의 욕구는 충족과 표현, 인정과 만족 등으로 내 방식대로 하고자하는 나 중심성의 기초를 제공해주고 나 자신을 더욱 강화 시켜주고,
나의 필요는 나 자신을 더욱 크게 생각하도록 자기 인식을 확대시켜 자신이 크고 중요하고 의미있는 존재가 되도록 나 자신을 더욱 강화 시켜주고,
나의 느낌은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황홀한 경험, 흥분, 기쁨, 자극을 통해 나를 영적으로 연결시켜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누구이든 나의 주권을 더욱 강화시켜주었다.
이 새로운 삼위일체는 하나님이나 성경을 없애 버리지 않는다. 크든 작든 자신이 만들고 싶은 만큼의 하나님을 위한 자리를 만들 수 있다. 다만 필요와 욕구와 느낌이 하나님보다 더 위에서 섬김을 받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우리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이러한 새로운 삼위일체의 방식으로 다루도록 훈련받아왔기 때문이다.
사실상 학교 교육과 대중매체가, 전문가들과 저술가들이 우리에게 사회적으로 우리가 주권적 자아를 행사 할 수 있는 방법을 너무나 완벽하게 우리의 본성에 맞추어서 너무도 권위있게 표현하고 있어서, 우리가 성경을 이 새로운 텍스트인 거룩한 자아(욕구,필요,느낌)와 교환했다는 사실을 거의 인식하지 못할 정도다.

자기 주권성으로 하나님의 자리가 대체된 성경은 인격과 관계와 계시로 이어지지 않는다. 지식과 실용성, 영감 위주의 비인격적인 방식으로 흘러 갈 위험이 있다. 그것은 성삼위일체의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면서 읽고 듣을 때 얻는 것과는 완전히 어긋난 결과를 불러일으 킬 수 있다.

칼 바르트가 궁극적으로 주장한 것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우리 삶에 들어오시게 하고 우리 삶에 참여하시게 할지를 알기 위해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진리나 역사, 도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주권적인 하나님의 계시에 자신을 맡기고 그 성경 안으로 들어가는 것 이었다.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것을 위해서, 혹은 밋밋한 생활에 색채와 양념을 더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것을 끌어내기 위해서 그것을 '이용' 할때 우리는 성경의 계시를 침해하게 된다. 하나님을 자기 향상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다. 아니다. 우리는 그것보다 휠씬 더 큰 무엇을 추구해야한다.
우리 삶을 성경에서 읽는 내용에 굴복시키면 우리 이야기에서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야기에서 우리 이야기를 보게 될 것이다.

유진피터슨의 이책을 먹으라.. 을 읽으며
또 그렇게 신 앞에서 선 단독자로서 부끄러운 종의 모습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또 그렇게 신 앞에서 정직하게, 더 진실하게 내 모습이 드러나기를 기도하며 오늘도 또 그렇게 두렵고 설레는 발걸음을 내 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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