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퍼의 물음과 거룩한 상상력
ㅡ. 본회퍼의 물음과 거룩한 상상력
"그리스도는 어떻게 종교없는 자들의 주님이 되실수 있을까? 종교없는 그리스도인이 존재할까? 종교가 기독교가 입고 있는 옷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 옷도 각 시대마다 각기 달리 보여야 했다면, 종교없는 기독교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에 관하여 세속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 종교없는 세속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는걸까? 만약 우리가 자신을 종교적으로 우대받는자들이라고 이해하지 않고, 오히려 완전히 세상에 속한 자들이라고 이해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선택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는 더는 종교의 대상이 아니고, 전혀 다른 존재이며, 진정으로 세상의 주인이 되는 것인데, 그것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종교가 빠진 예배와 기도생활이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ㅡ. 본회퍼, 저항과 복종, 404-405 중에서 발췌
본회퍼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오늘''의 하나님을 질문했다. 거칠게 말해 어제의 진리의 말씀이 오늘의 진리의 말씀으로 고정되리란 법은 없다. 그늘 매순간 오고계신 오늘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자하는지에 자신의 사유를 일치하고자 분투했다. 그런의미에서 그는 일찍감치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서구기독교가 이미 종말에 이르렀음을 끝없이 의심했고, 새로운 복음의 방식이 혹시 동양에서 더욱 리얼해지는건 아닌지 궁금했다. 그가 간디를 만나고 싶었던 이유도, 그가 미국에서 흑인을 만나서 목회를 한 이유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연관이 있다.
오늘날을 혹자는 반종교를 거쳐 탈종교, 급기야 무종교의 시대라 한다. 그렇다면, 본회퍼의 말마따라 우리가 정체하며 안주하느라 오고있는 복음의 방식을 상상할 여력을 상실하지 않을지 심각하게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 또한 압이 찼고, 어딘가 새로운 흐름이 도래하길 한국교회뿐 아니라 이 세상적 현실이 고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일까? 아니면 우리야 말로 이방인일까? 우리 밖 어딘가 진정한 제자도를 실현하는 남겨진 그리스도은 누구일까. 우리는 상상해야하고, 깊은 신뢰를 가지고 모험적인 사유에 자신을 끊임없이 갱신할 필요가 있다. 실상 우리가 두려웠던것은 저너머의 세계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받은 자라는 내면의 안정감이 상실된다는 사실에 있다면 더더욱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