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것과의 거리

"고백하자면 나는 살아오면서 한 번도 모든 것을 걸고 싸워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싸움은 자체가 수단이고 목적인 순수하고 절대적인 싸움이다."

모든 것을 건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랬던 적이 있을까? 아마 그랬지 않기에, 그것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아내는 그랬던 적이 있었다. 아내가 수술실에 들어가고, 나는 홀로 작은 병실에 남아 간호사의 설명을 들었다. 설명은 모두 전신마취를 비롯하여 수술 후 있을 부작용, 주로 죽음에 대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저 듣고 앉아 있는 것 외에, 그리고 마지막에 서명하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완전한 무기력이었다.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질문할 것도, 저항할 것도 없었다.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모든 것을 걸고 아이를 세상으로 내보냈다. 아이가 나오기 전, 우리는 자주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다 컸는데, 이 얇은 가죽 너머에 있는데, 이걸 그저 꺼내기만 하면 되는데! 그런데 그 얇은 가죽 너머로 나오는 일이 그렇게나 힘들었다. 겨우 몇센치 너머에 있었는데, 그 간극은 모든 걸 걸어야 하는 거리였다. 모든 것, 청춘, 생명, 신체, 마음, 정신, ... 그 어느 것 하나 예외가 있을 수 없는 모든 것을 걸고, 아이를 만났다.

한번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밖으로 나서보지 못했던 사람,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자기이기만 했던 사람, 그래서 근본적으로 자기가 서있는 대지를 한번도 뒤엎어보지 못했던 사람 ─ 그런 나는 어쩌면, 모든 것을 걸고 싸워보았던 아내의 혹은 어머니의 경험이라는 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단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종종 그런 사실을 잊는다. 그녀들은 나보다 한참은 더 대단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평생 미치지도 못할 곳에 다녀왔다는 것을 말이다. 모든 것을 걸어본 적 없는 나의 나약함과 협소함을 말이다.

#김진영 #아침의피아노 #62쪽

'기억을 위한 발췌' 카테고리의 다른 글

ㅡ. 성서주석과 해석의 문제. 메모.  (0) 2020.10.09
학문  (0) 2018.11.04
설교  (0) 2018.10.02
종교철학의 과제. 메모발췌  (0) 2018.09.26
하나님의 의지  (0) 2018.09.19
TAGS.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