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원의 사랑이 시작되다.
창조의 이야기는 역사적 진리가 아니라 영원의 진리다. 영원이 현재와 만나는 이야기이자, 영원이 불씨가 되어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내는 질서와 사랑의 이야기이다. <영원의 사랑이 시작되다 : 창조 이야기 기원>은 창세기 1~3장 사이의 기원의 원리와 노아 이야기를 통해 고통스러운 우리의 삶을 재료로 지금도 창조의 역사를 계속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을 심도 있게 다루었다.
하나님은 태초 이전, 창조 이전부터 계셨다. 창조는 충만한 존재가 사랑을 위해 자신을 쪼갬으로 일어났다. 하나님으로 꽉 차 있는 영원, 즉 ‘Todo’가 자신을 나눔으로써 무無, 즉 ‘나다nada’가 생겨났다. 하나님은 자기에게서 떨어져 나온 무를 붙잡고 새 창조를 위해 인내로 운행하신다. 우리 안에...는 이 Todo, 전부인 영원을 향한 큰 갈망, 즉 내가 떨어져 나온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갈망이 있다. 하나님의 찢긴 시간으로부터 영원과 연결되는 길이 열렸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찢긴 몸으로부터 우리가 그분의 성령으로 다시 하나님과 연결되는 길이 열렸다. 불안의 근원은 이 일치와 창조에 대한 갈망과 연결되어 있고, 우리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텅 빔은 그분께로 가는 또 하나의 길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창조는 분리와 경계로 시작되었다. 말씀은 경계를 낳고, 경계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냈다. 경계로 인한 사이와 공간은 현상으로 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생명을 유지하는 생명의 강이 흐르고, 말씀의 영이 운행하며 사랑으로 경계를 지켜주는 공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선악과는 ‘금기’가 아니라 ‘언약의 징표’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켜내는데 사용할 수 있는 권한과 거룩한 경계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이처럼, 창조의 시간은 태양력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진리의 빛에 의해 조명 받고 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라는 문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상적인 앎의 틀에서 잠시 벗어나 진리의 빛으로 창조된 새로운 날을 바라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밤의 차원에서 펼쳐지는 내면과 무의식의 세계를 넘어, 타인의 시선과 두려움, 사회적 규약을 벗어나, 마음 속 깊은 곳에 일어나는 진정한 갈망을 마주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은총을 온전히 맞이할 수 있다. 성경의 인물과 기독교 전통의 인물은 바로 이 침묵과 부재의 시간을 새로운 아침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믿으며, 땅과 하늘을 연결 지었던 사람들이었다.
바벨탑 이야기는 오늘날 문명이 두려움과 욕망, 교만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말해준다. 경계를 벗어나 끊임없이 우리가 바라는 방식으로 나아가려 할 때, 인간의 삶은 반드시 파괴될 것이다. 노아가 심판을 받지 않고 새로운 인류를 만들어내는 첫 조상이 되었듯, 우리 안에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건설되어야만 밖으로 하나님 나라를 건설 할 수 있다. 우리 삶에 짙은 구름이 끊임없이 찾아 올 순 있지만, 동시에 그 뒤에는 무지개의 언약이 숨어 있음을 신뢰할 때, 또 영원으로부터 초대한 이 사랑에 모든 것을 내어드리며 응답할 때, 새로운 일은 시작된다. 영원이 세계로 돌입하도록 믿음을 가지고 신뢰로 내어드릴 때, 영원의 사랑이 시작된다.
ㅡ김화영 목사님의 영원의 사랑이 시작되다. 요약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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