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의 통찰
어거스틴의 인식론은 사실상 '앎'의 차원이 아니라 일종의 '사랑의 현상학'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어거스틴의 앎의 방식이면에는 언제나 '사랑'의 인격성이 뿌리깊게 의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말하지면 사랑할수록 알려지고, 사랑하지 않을 수록 무지해지는 것이다.
한 예로 어거스틴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기를 그만둘 때,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집적적인 직관은 너무나 약해져서 우리가 하나님을 다시 새롭게 사랑하기를 시작할 수 있을만큼 충분히 하나님을 의식할 수 없게된다"는 말한다.
논리라기보다는 일종의 선각자의 선언으로 보여지는 저 말에 우리는 무슨 반박을 할수 있을까. 나는 진리가 어느편에도 완전히 소유될수 없다고 믿기에, 다시말해 진리적 통찰은 어디에나 있다고 믿기에 논증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어쩌면 우리의 인식론은 어떤 앎의 방법론보다 삶의 습관적 태도에 의해 형성되어져가는데, 무언가 굉장히 중요한 감각을 잃어가고 있는건 아닐까 두렵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기부정과 자기거부 (0) | 2020.11.09 |
---|---|
거부와 환대 (0) | 2020.10.15 |
2018.08.13 (0) | 2018.08.13 |
ㅡ.영적해석학의 부재 (0) | 2018.07.24 |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1) | 2018.06.29 |
TA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