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오웬, 신자안에 내재하는 죄
『신자안에 내재하는 죄』
존 오웬 전집01
1부. 죄의 본질
❑ 죄에 대한 성경 본문 :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7:21)
1. 죄는 곧 법이다.
→ 일차적 의미에서 법은 지시하고 명령하는 도덕적 규칙으로서 어떤일을 하도록, 어떤 일은 하지말도록 움직이고 강제한다, 이차적 의미에서 법은 지속적으로 어떤 행동들을 이끌거나 강제하는 내적원리 곧 힘을 갖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았을 때, 우리가 “법”이라는 호칭 또는 용어를 죄와 관련시켜 사용할 때에는 신자들 안에 내재하는 죄의 잔재 속에 지속적으로 악을 행하도록 이끄는 특별한 효능과 힘이 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죄의 법은 신자들 안에서 발견된다.
→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이 말은 “내가 죄의 권능과 효능을 경험했노니” 라는 뜻이다. 말씀의 가르침을 받은 사실을 우리 자신 속에서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그 사실에 대해 진실로 곧 실제로 아는 것이 된다.
→ 죄의 권능을 발견하지 못하는 자들은 죄의 지배 아래 있다는 증거입니다. 죄와 싸우는 자들은 누구든 죄가 자기 안에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또 존재하는 죄를 발견하게 됩니다.
→ 죄가 이끄는 대로 흘러다니는 자는 죄를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죄를 거슬러 헤엄치고자 하는 자는 죄의 흐름을 강하게 느낄 것입니다. p38
3. 신자들의 의지의 경향적인 성향은 선을 행하기 원하는 것이다.
→ “선을 행하길 원하는 나에게” 선을 행하도록 이끄는 법이 “존재합니다” 신자들의 의지의 경향적인 성향은 선을 행하기 원하는 것입니다. 신자들 안에 있는(in) 죄의 법은 비신자들과 같이 그들에 대한(to) 법이 아닙니다. 신자들은 죄의 힘에 대해 전적으로 지배를 받는 것도 아니고, 도덕적으로 죄의 명령에 순응하는 것도 아닙니다. 신자들 영혼속에 은혜가 주도권을 행사합니다.
→ 곧 신자들 속에는 내재하는 죄의 힘과 효능에도 불구하고 은혜로 말미암아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 지속적이고 통상적인 주도적 의지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p39
4. 신자들 안에 악이 존재한다.
→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 “선을 행하길 원하는 나에게” 죄의 법의 존재는 걸림돌이 됩니다. 다시 말해, 악은 가까이서 선을 행했을 때 일어날 경과를 항상 대적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 선을 행하려는 의지가 특별히 적극적으로 행동할 때, 내재하는 죄는 효과적으로 반역을 부추기고 악으로 이끄는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신자이면서 죄인인 사람은 두 법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모습입니다. 이 두법은 서로 대립하는 원리로서, 그 사람 안에서 서로 간에 반대작용을 합니다. 이 두 원리 가운데 하나는 은혜로부터 선을 행하려는 의지이고, 다른 하나는 죄의 법입니다.
✔ 로마서 7장 21절을 통해 우리가 살펴보기 원하는 핵심사실은 신자들 안에는 내재하는 죄의 잔재의 악으로 이끄는 지속적인 성향 및 활동으로 말미암아 죄의 특별한 효능 및 힘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목적은 최대한 우리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성향을 일깨우는데 있습니다.
2부. 죄의 본질
❑ 죄의 법의 특징
내재하는 죄는 곧 법이다. 내재하는 죄가 법으로 불리는 이유는 강한 힘과 효능 때문이다. 법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힘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법 일반에 속해 있는 특징을 먼저 살펴보고, 이어서 우리가 다루고 이는 죄의 법의 고유한 특징을 살펴보도록 하자.
1. 법 일반의 특징
1) 지배권
지배권에는 두가지가 있다. 사람을 도덕적 권위로 지배하는 지배권이 있고, 사람 속에서 실제 효능을 일으키는 지배권이 있다. 전자의 지배권은 하나님의 법에 관련되고, 후자의 지배권은 죄의 법에 관련된다. 죄의 법은 사람에 대한 정당한 지배권이나 권위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사람 속에서 그에 사응하는 지배권을 갖는다. p.48
2) 효 력
법은 반드시 보상과 형벌을 수반한다. 죄의 법을 지킬 때 곧 죄를 범할 때 생기는 쾌락이 죄의 법이 제공하는 보상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 보상 때문에 영혼을 상실하고 있다. 죄는 또한 죄의 멍에를 벗어 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사람들을 위협하는 형벌을 갖는다. 이 형벌을 통해 죄는 영생을 얻지 못할까봐 두려워 하는 사람들을 지배한다. 즉 복음에 순종하여 죄를 죽이는 엄격한 과정 속에서 우리 본성의 감각적 부분에 어떤 고초나 고통이 따르든 간에, 죄는 마치 사람들이 그 계명을 지키지 못할 때 형벌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이용한다.
내재하는 죄는 보상을 통해 죄의 욕심을 만족시키는 다양한 방법과 행동들을 하도록 유인함으로써, 사람들이 죄를 범하도록 곧 작위의 죄를 짓도록 만든다. 또 죄는 형벌을 통해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도록 곧 부작위의 죄를 범하도록 사람들을 사람들을 유인한다. p.49
2. 죄의 법의 특징
내재하는 죄는 외적으로 명령과 지시를 기록하고 있는 법이 아니고, 본성에 내재되어 충동과 강요를 일으키는 법이다.
1) 존재하는 경향성으로서의 죄
첫째로, 그는 죄를 인간의 영혼 안에 있는 경향성으로 본다. 이러한 경향성은 사람의 마음 안에서 성향을 갖게 하며 이로써 마음 안에서 혹은 행동으로 작용한다. 오웬은 ‘신자 안에 있는 죄’와 ‘행동으로 드러나는 죄’를 명확히 구분한다. 후자는 악에 속하는 인간 행위의 죄이며, 전자는 그것을 불러일이키는 원인으로써 작용하는 마음의 성향이다.
죄의 본질은 실재적인 면에서와 도덕적인면에서 각각 다르게 정의될 수 있다. 실재적인 면에서 보면 죄의 본질은 경향성이고, 도덕적인 면에서 보면 하나님께 대한 적의이다. 하지만 이 둘은 분리될 수 없다. 즉 경향성으로서의 죄(행동으로 드러나는 죄)가 흐르는 물이라면, 작용하는 적의의 성향으로써의 죄(신자 안에 있는 죄)는 물길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경향성은 그 것으로 하여금 사물을 끊임없이 같은 방향으로 작용하게 한다.
존 오웬은 죄를 설명함에 있어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의 틀을 사용한다. 즉 죄를 인간의 영혼 안에 있는 경향성으로 보는 것이다. 죄를 영혼 안에 있는 경향성으로 보는데 이 경향성은 도덕적으로 작용하게 하는 힘, 곧 마음의 성향으로 나타난다.
2) 작용하는 성향으로서의 죄
둘째로, 작용하는 성향으로서의 죄이다. 존 오웬은 죄의 작용의 본질을 마음의 성향이라고 본다. 인간의 마음 안에 있는 죄의 작용하는 성향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적의이다. 그리고 이 적의는 다시 두가지로 이루어지는데 하나는 반감이고, 다른 하나는 대적이다. 그리고 이 죄는 인간의 마음 안에서 속임과 강압이라는 두가지 수단을 가지고 역사한다.
이러한 죄는 다음 세가지 특성을 가지고 인간의 마음 안에서 역사하는데 첫째로 미친 기운 곧 이성의 판단을 뿌리치고 역사하는 광기와, 둘째로 자신의 정욕을 만족시키는 데 있어서 드러나는 맹렬함과, 셋째로 죄의 성향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게 될 때 그는 담대함 내지는 무모함을 가지고 행동하게 하는 바, 이것이 바로 죄가 신자의 마음 안에서 역사하는 특성들이다.
✔ 존 오웬의 성화론의 강조점은 이러한 죄의 역사하는 작용을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다룰 수 없다는 점이다. 타락한 인간은 물론이고, 중생한 신자라 할지라도 이러한 죄의 강력한 작용과 역사를 스스로 처리할 수 없다고 본다.
✔ 하나님은 구원의 과정뿐 아니라 성화의 과정을 통해서도 인간으로 하여금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보여 주심으로써 그 모든 과정을 하나님을 인정하는 과정으로 사용하신다.
3부. 내재하는 죄
신자들 속에 하나의 법으로 남아 있는 죄의 잔재를 다루고, 거기에 또한 죄의 힘을 일반적으로 살펴보았으므로, 이제 우리는 전반적으로 죄와 과련된 죄의 효능의 구체적 특징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효능은 구체적 특징들은 세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죄의 자리와 주체. 둘째, 죄의 본질적 속성. 셋째, 죄의 역사와 역사방식이다.
❑ 죄의 효능의 구체적 특징 (죄의 자리와 주체)
성경은 도처에서 죄의 법의 자리와 주체를 마음이라고 규정한다. 내재하는 죄는 마음속에 특별한 거처를 두고 있습니다. 죄가 마음속에 들어와 하나님의 보좌를 차지해 버렸다. 모든 죄악의 뿌리와 발생과 준동은 마음 속에 있다. 시험과 죄의 기회들이 사람 속에 죄악들을 집어 넣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전부터 사람 속에 있었던 것이 흘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죄의 법 전체활동과 결과에 대한 성경의 종합적인 결론은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라”(창:6:5) 는 것이다. p. 60
→ 성경에서 마음을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때로는 지성과 오성, 때로는 의지, 때로는 정서, 때로는 양심, 때로는 영혼 전체를 가르키는 의미로 사용된다. 절대적으로 아니지만, 대체로 마음은 사람의 전 영혼과 영혼이 지닌 모든 기능을 망라하는 개념을 가르킨다. 하지만 전 영혼과 그 기능들은 모두 도덕적 작용의 한 원리로서, 곧 우리가 선한거나 악한 일을 행하는데 연루되어 있다. p. 62
→ 마음의 틀 : 인간 영혼의 경향성은 사물을 인식하고 감정을 느끼고 또 의지로써 행동하는 영혼의 모든 활동에 일관된 영향을 ㄹ주는데 이것을 가르켜 존 오웬은 마음의 틀이라고 표현하였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수도 없음이라“(롬8:6~8). 여기에서 ‘생각’이라고 번역된 희라어 단어가 ‘프로네마(pronema)’ 인데 이것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생각되는 성향’ 이라는 말이다.
인간은 누구든지 이러한 ‘프로네마’를 가지고 있어서 마음 안에서 스르로 발생하는 ‘상상’이나 외부사물과의 접촉으로 말미암는 인식과 ‘정동’의 방향을 결정한다. 이것이 바로 존 오웬이 성화론에서 자주 거론하는 마음의 틀 개념이다.
→ 존 오웬에게 있어 인간의 마음의 틀은 죄의 성향을 지배받으면 죄스러운 틀을 지니게 되고 은혜의 성향에 의해 지배를 받으면 은혜로운 틀을 지니게 된다. 여기서 ‘프로네마’는 단지 생각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감정, 의지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는 총체적인 영향력의 틀이다. 오웬은 ‘마음의 틀’로 표현한 프로네마는 본질적으로 오직 두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데 하나는 육신(신자 안에 있는 옛 본성), 다른 하나는 영(신자 안에 있는 새 본성)으로 작용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인간은 진리의 밝은 빛에서 멀이질 때 필연적으로 자기의 육체밖에는 사랑할 수 없는 존재’ 라는 명제가 존 오웬에게는 ‘인간이 죄의 속임에 떨어질 때에는 그는 필연적으로 죄의 욕망에 굴복 할 수밖에 없다’ 는 명제로 전환된다.
❑ 죄의 본질적 속성 : 적의
→ 죄는 우리 안에서 성령의 원수로 등장한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갈5:17) 죄는 우리 안에서 성령 곧 영적 원리를 정복하려고 싸웁니다. 왜 죄는 내용이나 태도에 있어서 우리가 원하는 선을 행하지 못하도록 의무를 방해 하는가? 왜 죄는 영혼을 육신적이고 무능하고 불신적이고 세속적이고 곤고하고 방황하는 상태로 만드는가? 그것은 죄가 의무를 통해 영혼과 교제를 나누기 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적의’이기 때문이다. p.76
→ 죄 자체가 반대하는 직접적 대상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권위이다. 곧 모든 죄는 하나님을 반대하고 그분의 멍에를 벗어 던지며,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마땅히 가져야 할 의존관계를 깨뜨린다. 죄는 하나님께 굴복하지지 않고, 할수도 없다. 왜냐하면 죄의 본질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대적에 있기 때문이다. p.78
우리가 죄의 성격에 대해 선언한 사실은, 죄는 하나님에 대한 적의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적의의 활동이나 작용에는 두 가지 일반적인 범주가 있는데, 하나는 반감(aversation)이고 다른 하나는 대적(opposition)이다. |
❑ 죄의 행위와 활동 (1) 반감
→ 적의에는 하나님 및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반감이 들어있다. 하나님과의 교제의 근간이 되는 의무를 태만이 하는 것, 의무에 싫증이 나는 것, 육욕에 빠지는 것 또는 의무를 형식적으로 이행하는 것은 모두 반감이라는 뿌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p. 83
→ 개인적인 의무들을 꾸준히 수행하는 모습 가운데 그들의 지성과 정서를 보면 그 속에서 이 반감이 발견되는데, 그들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을 통해 이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물리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 의무들을 부분적으로 게을리하다가 점점 전체적으로 중단하게 되고, 그렇게 완전히 양심을 상실하게 되면 죄와 방탕에 문을 활짝 열어 놓으며, 결국에는 완전히 배교에 이르고 만다. p. 86
❑ 죄의 행위와 활동 (2) 대적
→ 죄의 적의는 자신과 대립하는 것이 있을 때 반드시 그것을 반대하고 맞서 싸운다. 원수들이 서로 대적하는 방법으로는 두가지가 있다. 첫째는 강압으로 대적하는 것이고, 둘째는 기만과 속임으로 대적하는 것이다. p. 94
1) 강압을 통한 대적 : 네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 첫째, 죄의 일반적 성향이 나타나는 단계. 여기서 죄의 일반적 성향은 정욕이다. (갈5:17) ✱둘째, 죄가 개별적으로 싸우는 단계. 여기서 죄는 싸우거나 전쟁한다. (롬7:23, 약4:1, 벧전2:11) ✱셋째, 이 싸움에서 적의가 승리를 차지하는 단계. 여기서 죄는 영혼을 죄의 법으로 사로잡아 온다. (롬7:23) ✱넷째, 이 승리를 기초로 계속 자라고 기승을 부리는 단계. (전9:3) |
✱ 첫째, 죄의 일반적 성향이 나타나는 단계. 여기서 죄의 일반적 성향은 정욕이다. (갈5:17)
→ 어떤 죄를 범할 때, 죄는 먼저 정욕을 품습니다. 이것은 마치 태우는 것이 불의 일반적 행위이기 때문에 어떤 일보다 태우는 것을 먼저하는 것과 같습니다. 불이 어떤 것을 태울때처럼 죄의 법도 어떤 일을 행할 때 정욕을 불태웁니다.
⇒ 정욕을 불태우는 첫번째 방식 : 은밀히 숨겨진 죄의 지향성을 따라 역사하는 방식
첫 번째 방식은 죄는 온갖 악을 향해 나아가는 은밀히 숨겨진 지향성에 따라 역사한다.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라”(창6:5) 이런 사람은 악을 행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하거나 만들거나 일으키거나 행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의 마음은 죄의 법 안에 존재하는 악을 일으키는 습관적 성향이 철저히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내재하는 죄의 잔재로 인해 경향적으로 악에 기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죄가 본질상 또는 속성상 악에 대해 경향적인 지향성을 갖는 것이다. 즉 내재하는 죄는 정욕을 품어 범죄에 이르려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항상 존재한다. p. 97
→ 내재하는 죄는 마치 강과 같다. 강의 원천과 샘들이 열려 강물이 계속해서 흐르는 동안, 앞에 댐을 쌓아 강물을 막고자 하지만, 곧 강물이 들어차 급기야는 댐을 완전히 무너뜨리거나 댐 너머로 강물이 흘러넘치게 된다. 내재하는 죄도 이와 같다. 죄의 원천과 샘들이 열리면,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 결심, 맹세, 약속을 만들어 아무리 앞을 막아선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그들이 한동안 죄를 막아 놓지만, 그럴수록 때가 되면 죄의 수위는 더 높아지고 맹위를 떨침으로써, 그들의 모든 신념과 결심은 단숨에 허물어지거나 은밀한 욕심의 강물에 의해 그 출구가 폭포수 같이 쏟아질 것이다. p. 98
→ 따라서 죄의 법의 욕심에 대한 첫 번째 방식은 죄의 법은 악을 향한 죄의 경향적인 성향 속에 존재하면서 지체 없이 모든 시험과 결탁하여 영혼으로 하여금 죄를 범하고, 죄를 범할 준비를 하도록 부지중에 역사함으로써 정체를 드러낸다. p.103
⇒ 정욕을 불태우는 두번째 방식 : 실제로 악한 것은 강요하고 선한 것은 대적하는 방식
죄는 핏속에서 혈액들이 또는 현관 속에서 피가 그러는 것처럼, 영혼 속에서 끊임어벖이 이런저런 욕심의 도발을 일으킨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약1:14) 시험에 받는 다는 것은 시험에 응하면 악한 것 곧 죄가 되는 것을 고려하도록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제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욕심은 마음속에 일어나 생각과 정서에 악한 것을 끊임없이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죄의 증오가 하나님에 대해 펼치는 대적의 첫 번째 사실은 죄의 일반적 성향이 “욕심을 일으키는데 있다”는 것이다. p. 104
✱둘째, 죄가 개별적으로 싸우는 단계. 여기서 죄는 싸우거나 전쟁한다. (롬7:23, 약4:1, 벧전2:11)
→ 첫번째 단계에서 죄는 욕심을 일으켜 생각 속에 부적절한 상념을 심고, 욕망과 감정이 그 상념을 바라게 하며, 의지에 그 상념을 제한한다. 그러나 죄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열심과 힘을 갖고 제안들을 주장하고 강조하고 강요하며, 목적과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싸우고 대적하고 전쟁한다.p104
→ 죄는 은혜의 법을 반대할 뿐만 아니라 지배권과 주권을 빼앗으려고 시도한다. 죄는 은혜의 법이 제공하는 개별적인 명령과 지시들을 영혼속에서 소멸시키기 위해 광분한다. p. 109
✱셋째, 이 싸움에서 적의가 승리를 차지하는 단계. 여기서 죄는 영혼을 죄의 법으로 사로잡아 온다. (롬7:23)
→ 바울은 내재하는 죄의 잔재의 반대와 싸움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라고 표현했다. 신자들의 상태와 조건에 대해 바울은 탄식과 함께 구원을 바라는 간절한 기도로 이어진다. p. 116
→ 주 그리스도께서 사탄에 대해 승리를 거두신 사실에 대해 성경은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엡 4:8)라고 설명한다. 즉 다른 자들을 정복하고 패배시킨 자를 정복하셨다는 뜻으로, 그리스도는 이 일을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셨을”(히2:14) 때 행하셨다. 따라서 로마서 7장 23절 “저의 법이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본다”는 말씀의 뜻은 죄가 영혼을 대적하여 싸울 때 엄청난 힘과 능력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죄는 “사로잡기” 위해 싸우는데, 만약 큰 힘을 갖고 있지 않았더라면, 특히 영혼의 저항에 대하여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의미가 이 표현 속에 포함되어 있다. p. 117
✱넷째, 이 승리를 기초로 계속 자라고 기승을 부리는 단계. (전9:3)
→ 죄의 본질 속에는 광기가 들어있다.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전 9:3) 본성상 사람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악은 곧 내재하는 죄를 말한다. p. 124
→ 죄의 광분과 광기에 수반되는 것, 죄의 속성, 죄가 일으키는 결과
1) 죄의 광분과 광기 속에는 한순간이라도 성령과 은혜의 법의 멍에, 규칙 그리고 통치를 저지하려는 목적이 담겨 있다. 2) 죄의 광분과 광기는 위험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위험을 무시하도록 한다.
2) 속임을 통한 대적 : 세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죄 속임의 첫 번째 단계는 지성(생각)을 그 의무에서 끌어내리는 것이다. ✱둘째, 죄 속임의 두 번째 단계는 정서를 미혹하는 것이다. ✱셋째, 죄 속임의 세 번째 단계는 의지 속에 실제로 죄를 잉태시키는 것이다. ✱넷째, 죄 속임의 네 번째 단계는 실제로 죄를 범해 죄를 낳는 것이다. |
❑ 죄의 행위와 활동 : 속임의 1단계 - 지성을 공격
✱첫째, 죄 속임의 첫 번째 단계는 지성(생각)을 그 의무에서 끌어내리는 것이다.
→ 1) 죄는 죄가 갖고 있는 추악함과 위험성에 대해 적절한 생각과 이해와 감각을 갖기 못하도록 생각을 끌어내리려고 애를 쓴다. 보통 두가지 방법을 쓰는데 첫 번째 방법은 복음의 은혜를 과도하게 남용하도록 함으로써 생각을 끌어내리고, 두 번째 방법은 세상 사람들의 상태에 대해 적절한 인식을 하지 못하도록 은혜의 복음을 악용한다. 2) 지성은 영혼이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에 대해 지속적이고 거룩한 관심을 갖도록 지키는 역할을 한다.
→ 결론적으로 내재하는 죄가 속임을 통해 1) 죄의 악함에 대한 깨어있는 의식을 갖지 못하도록 그리고 2)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에 대한 합당하고도 지속적인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생각을 끌어내린다. p. 154
→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의무를 실천하는데 있어 우리의 생각이 견고하면, 영혼은 결코 흔들리지 않고 효과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게 된다. p. 169
→ 생각이 진실로 견고하려면 다음 세 부분에 있어 견고해야 한다. 첫째, 모든 일 속에서 하나님을 붙드는 마음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 둘째, 이 마음을 갖기 위해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하고 소생시키는 것. 셋째, 이 의무를 실천하는데 절대로 게으르거나 태만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하는 것. p. 170
❑ 죄의 행위와 활동 : 속임의 2단계 - 정서를 미혹
✱둘째, 죄 속임의 두 번째 단계는 정서를 미혹하는 것이다.
→ 끌려가는 것이 지성과 관련된 문제라면, 미혹되는 것은 특히 정서와 관련된 문제이다. 지성은 의무로부터 끌어내려지고, 정서는 죄로 미혹된다.
→ A) 정서가 죄의 속임에 미혹될 때는 언제인가?
1) 정서는 죄가 속임을 통해 미혹하기 좋은 대상에 대해 자주 상상에 사로잡힐 때 미혹된다.
정서는 죄가 속임을 통해 꾀고 미혹하기 적절한 대상에 대해 자주 상상에 사로잡힐 때 확실히 미혹된다. 죄가 기승을 부릴 때 정서가 쉽게 죄를 따라가면, 죄는 정서를 상상으로 가득 채우고, 그 결과 정서는 죄의 심상과 모양과 표상들로 사로잡히기 된다.
→ 안목의 정욕은 시각을 통해 영혼에 전달되는 욕심이다. 여기서 안목(eyes)은 육체의 시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보기 원하는 대상들에 대한 의식으로 인해 욕심이 대상에 고정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안목”으로 부르는 이유는 눈이 외부의 대상들을 내면의 의식에 전달하는 것처럼, 안목을 통해 사실들이 즉시 지성과 영혼에 제공되기 때문이다. 수시로 눈으로 보는 외적 대상들은 이러한 욕심의 원천이 된다. p.193
2) 지성이 헛된 생각들에 사로잡혀 상상을 은밀히 즐기고 만족스러워 할 때 정서는 미혹된다.
3) 죄를 범하려는 성향이나 자세 또는 죄를 범할 때 죄에 대해 갖고 있는 안도감이 정서를 미혹한다.
→ B) 죄가 속임을 통해 정서를 미혹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1) 죄는 지성을 의무로부터 끌어내릴 때 갖게 된 지배력을 이용하여 정서를 미혹한다.
죄의 속임도 정서를 미혹하기 위해 아무리 덫과 그물을 촘촘히 쳐 놓았다고 해도, 지성이 눈을 크게 뜨고 죄의 속임의 덫과 그물이 어디에 있는지 살핀 다음 의지와 감정의 날개를 사용하여 멀리 날아가 피해 버린다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그러나 죄의 속임은 먼저 잘못된 추론이나 주장들을 통해 지성의 시야를 다른 곳으로 돌려 정서를 향해 그물을 던진다. p. 196
2) 죄는 정서의 부패한 요소에 죄를 바람직한 것으로 곧 그리 나쁘지 않을 것으로 제시함으로 써 정서를 미혹한다.
→ 죄의 속임은 상상의 도움을 통해 육체의 타락한 욕심을 만족시키고, 부적절한 지성을 통해 정서를 흥분 상태에 빠지게 함으로써 정서를 헝클어지게 한다. p.197
3) 죄는 죄가 일으키는 위험을 숨김으로써 감정을 미혹한다.
→ 죄는 죄의 미끼와 속임수로 지성과 감정을 장악하고 지배하여 실제로 지성과 감정이 죄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 처음에 하와는 죄의 위험성을 지성에 인지시킴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려 하지만(“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사탄이 선악과 열매는 지혜롭게 할 만큼 아름답고 맛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자 하와의 지성을 빠르게 따 먹음으로써 주어지는 위험성과 그에 합당한 부수적 결과에 대한 생각이 실제로 벗어나게 되었다.p.198
→ C) 정서를 미혹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1) 일반적으로 정서 위의 것, 곧 하늘의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
2) 특별히,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정서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3) 정서의 힘을 위의 것에 집중시켜야 한다.
❑ 죄의 행위와 활동 : 속임의 3단계 - 의지에 죄를 잉태
✱셋째, 죄 속임의 세 번째 단계는 의지 속에 실제로 죄를 잉태시키는 것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약1:15) 잉태된 죄가 죄를 낳기 위해서는 오직 의지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의지의 동의가 없으면 죄가 저질러질 수 없기 때문에 의지가 죄의 실행을 동의해 버리면, 영혼 속에서 죄의 실제적 실행을 방애할 요소는 전혀 없게 된다. p.204
→ A) 죄의 유혹에 속임을 당한 지성이 의지를 압박하는 경우
우리는 어떻게 지성이 끌어내려지고, 정서가 헝클어지는지 살펴보았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일들이 어떤 결과를 일으키느냐 하는 것이다. 속임을 당한 지성이 어떻게 의지를 지배해서 죄에 대해 동의하게 하는지 살펴보자.
1) 의지는 죄에 대한 용서가 클수록 은혜도 더 크다는 지성의 부패한 생각에 넘어가 죄에 대해 동의하게 한다.
2) 시험의 때에 속임을 당한 지성은 부지중에 부패한 생각을 의식 속에 침투시킴으로써 의지를 압박한다.
3) 속임을 당한 지성은 의지 속에 부패한 생각을 집어넣어 의지를 무감각하게 만들어 의지를 압박 한다.
→ B) 미혹된 정서가 의지를 압박하는 경우
1) 미혹된 정서는 포악한 욕심의 준동이나 적당한 시험을 통해 의지 속에 불시에 어떤 충동이나 감정을 집어넣음으로써 죄에 동의하도록 의지를 압박한다.
2) 미혹된 정서는 지속적으로 은밀하게 의지를 유혹함으로써 죄에 대해 동의하도록 의지를 압박한다.
✔ 죄의 속임의 세 번째 단계인 죄의 잉태를 간단히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즉 죄는 죄를 잉태시키기 위해 의지의 동의를 얻고, 이 동의를 통해 영혼을 크게 오염시키기 위해 무수한 죄를 마음속에 잉태시킨다. 이 때 이 죄들이 실제로 저질러지지 않는다고 해도 죄책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p. 216
✔ 죄가 영혼을 속이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두가지 요소가 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무지. : 수행해야 할 의무가 무엇이든 저지르게 될 죄가 무엇이든, 영혼 속에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지성의 어둠이나 무지가 있다면, 죄는 결코 주도권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는, 오류와 적극적 실수 이다. : 이것은 허위를 진리로 취하는 것과 어둠을 빛으로 취하는 것을 말한다. 이 두가지는 죄의 법이 영혼 속에서 힘을 행사하는 데 커다란 이점을 갖게 만든다.
❑ 죄의 행위와 활동 : 속임의 4단계 - 실제로 죄를 낳음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이 말이 죄가 잉태되는 곳에서는 반드시 죄를 낳는 일도 벌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듯, 죄의 잉태는 의지가 죄에 대해 동의할 때 이루어지고, 죄를 낳는 것은 실제로 죄를 범하는 행위를 구성하기 때문에, 죄를 잉태한다고 해서 곧장 죄를 낳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의지와 마음의 탯속에 죄가 잉태되었으나 죄를 낳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우리가 여기서 살펴볼 일은 어떻게 죄를 낳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 첫째, 잉태된 죄가 낳지 못하는 것은 죄의 법에 기인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개입)
죄는 잉태하는 것을 그대로 낳는다. 만약 죄가 죄를 낳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부분 죄책이 아주 적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죄를 범하겠다는 명확한 의지를 가지면, 그 의지가 이미 실제로 죄이다. 모든 잉태된 지가 실행되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죄가 아닌 것도 아니다. 하지만 죄의 실행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것은 죄가 아닌 다른 손에 달려있다.
→ 둘째, 죄를 잉태한 사람이 죄를 낳는 경우, 그 사람 속에는 필수적으로 ‘죄의 힘’과 ‘죄를 실행하려는 의지’를 계속 견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죄는 잉태하는 것을 그대로 낳는다. 잉태된 죄가 죄를 낳지 못하도록 방해하려면 당연히 죄의 힘이나 죄인의 의지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이 영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로 이루어져 있다. p. 222
⇒ 죄가 잉태되면 하나님은 섭리와 은혜를 통해 죄를 낳거나 죄를 실행하는 데 절대 필수 적인 힘을 제거하거나 차단하심으로써 죄를 낳지 못하도록 막으신다. p. 222
⇒ 하나님은 잉태된 죄가 실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죄인의 의지 속에 직접 역사하신다. 하나는 어제하는 은혜이고, 다른 하나는 새롭게 하는 은혜이다. p.237
4부. 죄의 효능과 힘
❑ 죄의 효능과 힘 : 신자에게 작용하는 죄의 효능
⇒ 신자가 범하는 모든 실제 범죄와 경향적인 타락의 원인은 내재하는 죄 때문이다. p. 263
→ 머리와 심장의 피와 혈액들의 원천은 참으로 건강하고 온전하지만, 몸의 각 지체는 쇠약해 질수 있듯이,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의 어떤 지체가 쇠약하고 쇠퇴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충분한 생명을 위해 은혜를 공급해 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재하는 죄의 간섭과 방해로 인해 은혜의 효력이 강하게 차단당하기 때문이다.
→ 따라서 욕심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곳에서는 은혜가 아무리 크더라도 간신히 영혼을 살게 하는 정도에 그치고, 영혼이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특별한 힘을 주지 못한다. 은혜의 힘과 능력을 격렬한 부패함과 욕심의 집요한 공격을 물리치는데 사용하기 때문에 은혜는 영혼이 열매를 맺도록 돕는 역할을 적절히 수행할수 없게 된다. p. 269
내재하는 죄는 신자를 퇴보시키는 방법 1) 내재하는 죄는 세상 것으로 영혼을 혼란시킴으로써 신자를 퇴보시킨다. 2) 내재하는 죄는 영혼을 나태하게 하고 깨어 있지 못하게 함으로 신자를 퇴보시킨다. 3) 내재하는 죄는 신앙 고백자들의 나쁜 본보기를 본받게 하여 신자가 처음 가졌던 열심과 거룩함을 퇴보시킴으로써 신자를 퇴보시킨다. 4) 내재하는 죄는 마음 안에 있는 어떤 은밀한 개별적 정욕을 즐기도록 함으로써 신자를 퇴보시킨다. 5) 내재하는 죄는 기도와 묵상을 통해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교제하는 일을 등하신하도록 역사함으로써 신자를 퇴보시킨다. 6) 내재하는 죄는 영혼이 실천 없이 지식에만 집착하도록 함으로써 신자를 퇴보시킨다. 7) 내재하는 죄는 세상 지혜를 추구하도록 함으로써 신자를 퇴보시킨다. 8) 내재하는 죄는 마음과 양심 속에 오랫동안 회개하지 않고 남아있던 큰 죄를 통해 신자를 퇴보시킨다. |
❑ 죄의 효능과 힘 : 율법의 권세에 저항하는 죄의 힘과 효능
⇒ 율법이 내재하는 죄를 어떻게 반대하는가? 율법의 반대는 종종 막강하고 가공할 만하지만 언제나 소득은 어벖다. 죄가 율법의 모든 공격을 견뎌 내고 절대로 굴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 율법은 죄를 드러낸다.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 7:7) 세상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죄의 교리에 대해 배웠지만, 죄의 힘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죄는 성 안에서 은밀하게 활동하는 반역자와 같다. 율법이 하는 일은 바로 은밀하게 숨어있는 장소에서 죄라는 반역자를 끌어내 더 이상 죄가 영혼의 친구가 아니라 원수임을 밝히는 것이다.
영혼은 율법이 오면 이 원수의 정체에 대해 더 이상 무지하지 않게 된다. 만일 영혼이 이 원수에게 멸말할 일이 벌어지면, 율법은 원수를 공개하고 정체를 알려준다. p. 313
→ 율법은 죄의 치명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율법은 내재하는 죄의 불결성과 죄책을 영혼에 알려준다. 즉 죄의 불결성과 죄책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끔직한지, 또 죄가 얼마나 가증한 것인지, 죄의 하나님에 대한 증오가 얼마나 큰지, 죄가 얼마나 하나님을 싫어하는지 등을 알려준다. 율법에 나아가자. 그의 영혼의 질병이 그를 하나님으로부터 떼놓는 뿌리이자 원인으로서 심히 죄 되는 치명적인 질병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p. 314
→ 죄는 율법에게 결코 굴복당하지 않는다.
율법이 어떤 공격을 해 오더라도 죄는 조금도 지배권과 힘을 상실하지 않는다. 율법은 절대로 죄를 이길수 없다.(롬 8:3) 율법은 죄의 힘과 지배권을 박탈할 수 없다. 왜냐햐면 “율법 아래 있는 자는 곧 죄 아래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죄는 자기의 지배가 방해 받는 것을 알면 더욱 난폭하게 학대를 행하고 영혼에 대한 속박을 배가 시킨다. 그러므로 죄를 파괴시키거나 죄가 갖고 있는 지배권을 배앗는 것은 본질상 율법의 임무가 아니다. p. 317
→ 율법의 역사를 통해 죄의 활동을 한시적으로 거역할 수는 있지만, 율법으로는 죄의 샘과 원천을 마르게 할 수 없다.
단순한 신앙 고백자들은 그의 과거의 죄의 물줄기가 마른 것을 보고, 하나님의 역사가 그의 마음 속에 임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그에게 율법의 역사가 임한 것에 불과하다면 그의 죄의 길에 댐이 세워 진 것에 지나지 않고, 죄의 샘은 여전히 마르지 않으며 죄의 물줄기는 방향을 다른 곳으로 바꾸고, 은밀하게 다른 영적 죄들에 빠지게 될 것이다. p. 321
✔ 죄를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의 영의 역사를 통해서 이다. 죄책에 사로잡혀 있는 양심이 평안을 얻을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방법을 통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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