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비평학 한계

성서 비평학은 모든 인간의 책이 시공간의 제한을 받는다는 사실은 인식했지만, 그것을 설명하는 주체 또한 역사적 존재임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 즉, 근대주의에서 진리의 기준이었던 이성 자체도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을 간과했다.(성경 본문이 해석자에게 주는 의미는 원저자나 원독자의 역사적 지평에서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의미는 해석자의 역사적 지평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가다머의 해석적 지평 참조.) 이것을 인지하지 못한 성서비평학은 '본래적 의미'만을 진리로 이해했고, 이것이 성경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현재적 의미'에 위기를 초래했다. ㅡ김구원, 어떻게 성경을 읽을 것인가.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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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는다 말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그분을 사랑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자들은 실제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준 이들을 믿는 것이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실은 믿지만, 마음속에 아무런 열망이 없고, 분노도 없고, 의심도 없고, 절망의 요소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믿는 것이다. -미구엘 드우나무노(miguel de Unamu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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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치

#. 장치- 두 발신자와 응답주체 창조는 충만한 존재가 사랑을 위해 자신을 쪼갬으로 일어났다. 하나님으로 꽉 차 있는 영원, 즉 ‘Todo’가 자신을 나눔으로써 무無, 즉 ‘나다nada’가 생겨났다. 하나님은 자기에게서 떨어져 나온 무를 붙잡고 새 창조를 위해 인내로 운행하셨다. 하지만 창세기 1장의 우주적 차원의 ‘나다’가 창세기 3장의 실존적 차원의 ‘나다’로 분리되어 가면서 발신과 응답주체가 달라져 가기 시작했다. 창세기 1장의 발신과 응답주체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 형상을 닮은 인간으로, 완벽한 일치를 이루고 있었으나, 2장에서의 인간은 주체가 되려는 가능성을 지님으로 발신에 혼돈이 오기 시작했고, 3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인간은 스스로 주체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과 사단이라는 두 발신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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