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3월, 종교철학과 입학

 
연세대학교 대학원 종교철학과(Th.m)에 입학했다. 대학교를 졸업한지 6년만의 일이고, 고등학교를 졸업한지는 11년만의 일이다. 새삼스럽게 수를 셈하는 이유는 내게 있어 '학업'은 늘 내가 예기치 않는 순간과 맞물려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이후에도, 대학 졸업이후에도 내가 계속 공부할 수 있을거라고 쉽사리 생각진 못했었던 것 같다. 혹자는 대학원까지 온 마당에 이게 무슨 궤변이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는 친한 지인 몇몇이 있으니 혼자만의 독백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일까. 교문에 들어서며 삶에 대해 묻는 방식이 조금 달려졌음을 느꼈다. 학부시절 '자네 그 길을 가려나' 라는 질문을 두려워하며 남몰래 물었던 '주님, 제 길은 도대체 어떤 길입니까?' 라는 물음은 이제 '그분이 예기치 않는 일을 준비하시는데, 지금 여기의 자리에서 응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이겠습니까?'로 바뀌었다. 내가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그 길을 이끄시에, 이전에 했던 온갖 질문들을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또 기다리며 응답해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러한 물음 이면에는 '두려움'과 '죄성'이 있고, 더 나아가 물음자체에도 숨겨진 '지향성'이 있음을 이제는 어렴풋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새학기 첫 수업, 지도교수님이 수업을 마치며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아마 '앎'이 다 담아내지 못했던 '삶'에 대해 겸손하지 못해서 일것이다. 그 순간 잠시나마 뜻밖의 인도하심과 새로운 시작, 그리고 시간에 대해 곱씹어보았다. 그리고 막연했지만, 기대하는 마음으로 대학원생활이 '앎'을 통해 물었던 '삶'을, 뜻밖의 '삶'을 통해 물어진 '앎'으로 전환하는 작은 계기가 되길 마음 깊이 기도했다. 

"새학기, 기대하고 싶은데 아는게 별로 없어서라고 말한 친구들이 있는데, 이건 알아서 하는것도 아니고, 알지 못해서 못하는것도 아니야. 삶이야 삶. 그러니 아는게 없어서라고 말하는 것은 살고 있지 않아서라는 말과 같아. 다시말해, 삶에 대해 곱씹고 있지 않아서라고! 그럼 이제 할일은 뭐야? 뭘 알려고 하는게 아니라 내 삶을 곱씹으라고. 내삶과 내가 사는 세상을 text 삼아서, 책들을 co-text, con-text 삼아서 꼽씹어봐야지, 그래야 그것이 자극제가 되고 참고서가 되지 않겠어?" - 대학원 첫수업, 마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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