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미련일까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김균진 교수님의 <헤겔의 역사철학> 책을 사서 틈틈이 읽고 있다. 석사논문을 쓸때, 본회퍼가 헤겔을 매우 중요한 대화상대로 생각했다는 단초는 이런식으로 미련을 남겼나보다. 철학을 제대로 공부를 할수 없지만 칸트식의 물자체로 신의 자리를 '저너머'의 알수 없음으로 넘기는 것보다 헤겔이 말하는 활동성으로 말미맘아 신의 자리를 '지금도' 역사하고 있는 현실의 역동성으로 보는 사고는 신학을 바라보는 시각에 굉장히 큰 변화를 준다. (왜 이것을 학부 신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다소 억울하다)

단연컨데, 본회퍼는 헤겔철학과의 대화 속에서 자신의 신학을 '현실과 공동체로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현실'로 구체화시켰다고 본다. 단순히 현실이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라 치열한 학문적 씨름이 사유의 전환을 일으켰다는게 중요하다. 그러고보면 헤겔을 역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헤겔은 멈춰버린 표상(그것이 눈앞에 있는 것이든, 저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이든)적 사고는 신학적사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것이라 비판한다. 즉 헤겔의 실증종교에 대한 비판은 죽어있는 종교, 즉 운동과 역동을 잃어버린 하나님나라에 대한 슬픔이 뵈어있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고정된 표상이나 실체가 아니라 무한한 운동이나 활동성을 자신의 사유에 중요한 요체로 말하고자 한다.

졸업한마당에, 이책을 다시 읽는 이유가 뭘까? 가만히 생각해본다. 아마도 가만히 머물러 아무런 상호작용이 없는 나의 신학에 대한 부질없음에 대한 한탄이 한몫했으리라. 김균진 교수님이 정신의 활동성의 근거는 그리스철학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있다! 그리고 우리를 이를 구별되면서도 하나가 되려는 삼위일체 하나님에게 찾을수 있다!는 주장이 내겐 이렇게 다가왔다. 아. 교수님이 대학원 시절에 헤겔의 하나님이해에 관심이 있으셨기에 끊임없이 대화의 신학자로 연구를 멈추지 않으셨구나. 학문은 고정된 결과가 아니라 통합과 일치를 향한 끊임없는 운동성이라는 교훈은 단순히 지식과 정보가 아니라 학문하는 태도와 방식에도 영향을 줄수 있구나.

700페이지가 넘어가는 책을 끝까지 읽을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페이지마다 교수님의 이러한 자세와 태도가 간간히 적혀있어 읽을만한 쉼표가 되어준다. 어쨋든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세상을 바라보는 혹은 삶의 태도를 전복하는 사유의 형성이 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발견일텐데 이를 충분히 음미하지 못했다는게 아쉬움이 남아 끄적여 보았다. (그나저나 육아전쟁에 돌입한 내가 이책을 끝까지 읽을수 있을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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