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퍼와 철학자들

본회퍼와 철학자들 / 최경환

 

본회퍼는 그동안 나치에 저항한 행동하는 지성인이자 많은 사람들에게 신학적인 영감을 제공한 루터교 목사이자 종교지도자로 알려져 왔다이러한 이미지는 미국에서 본회퍼가 어떻게 수용되었는지 와도 연결되는데초기에 [나를 따르라] [신도의 공동생활]과 같은 설교집이 먼저 소개되고이어 [옥중서간]이 수용되면서 60년 말 '세속화 신학''사신신학'으로 그의 신학이 확산되어 알려지게 되었다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본회퍼의 글들이 대부분 은혜롭고 감동적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서 철학적 사색을 유추하는 것을 의아해 할 수도 있다하지만 본회퍼가 학창시절 공부한 내용과 그가 꾸준하게 철학책을 손에서 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그의 신학적 사유 이면에 단단한 철학적 토대가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본회퍼의 신학적 여정에 강항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철학자들로는 칸트헤겔니체딜타이를 들 수 있다하지만 오늘날 본회퍼 연구가들은 그의 후기 저서에서 비치는 성숙한 세상과 비종교적 해석으로부터 다양한 현대철학적 아이디어들을 끄집어내고 있다이미 아렌트아도르노레비나스데리다푸코와 그의 신학을 연결해서 해석하는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고꾸준히 현대철학과의 대화가 시도되고 있다

 

본회퍼의 지적여정은 그가 17살에 튜빙겐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시작되었는데그는 그 곳에서 신학보다 철학에 관심을 갖고 독일의 인식론과 비판철학을 열심히 공부했다이후 그는 베를린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도 베버헤겔후설하이데거를 탐독했는데당시에도 지속적으로 철학책을 읽었다본회퍼는 1927년에 제베르크(R. Seeberg)의 지도로 성도의 교제(Santorum Communio)라는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하고이후 1930년에는 행위와 존재(Act and Being)라는 제목으로 교수자격논문을 완성한다

 

첫 번째 책의 부제는 [교회사회학에 대한 교의학적 연구]인데 이름처럼 19세기 독일의 철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헤겔의 철학을 정점으로 자신의 신학적 교회론을 정립한다여기서 그는 트뢸취와 하르낙으로 대변되는 당시 자유주의 신학의 역사주의와 사회학적 교의학을 비판하고동시에 바르트의 계시신학에 대해서도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서로 조화될 수 없는 둘 사이의 간격을 헤겔의 절대정신으로 중재한다헤겔이 ‘공동체로 존재하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려고 했다면본회퍼는 ‘교회 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고자 했다헤겔에게 공동체는 절대정신이라는 형식 속에서 성령이 내주하는 공간이라고 한다면본회퍼는 이를 기독론적으로 전유해서 교회 공동체를 계시의 장소를 파악하고그리스도의 구체적인 현현이라고 말했다(Bethge 2000, 83).

 

본회퍼의 두 번째 책인 행위와 존재 [조직신학 내에서의 초월철학과 존재론]이라는 무거운 부제를 가지고 있는데성도의 교제와 마찬가지로 독일철학에 대한 선이해가 없으면 읽어내기가 상당히 힘든 작품이다여기서 본회퍼는 이전의 작품에서 자세하게 다루지 못했던 계시의 문제를 보다 집중적으로 다룬다여기에서는 바르트와 불트만의 계시 이해와 칸트의 초월론헤겔의 존재론후설쉘러하이데거신칸트학파의 철학들이 등장한다일반적으로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관념론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예를 들어튜빙겐의 바우어는 헤겔의 변증법을 사용해 초대교회의 발전을 설명했으며슐라이마허는 칸트와 관념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신학과 관념론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일어났는데철학적으로는 포이에르바흐엥겔스키에르케고어를 통해서신학적으로는 칼 바르트에 의해서 기존의 자유주의 신학과 날카로운 대립각이 세워졌다여기에서 칸트 철학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한 몫을 했고본회퍼는 이를 바르트의 계시론과 엮어서 설명했다이는 그의 박사학위 논문이 변증법적 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이 혼재해 있는 것과 대비된다(Wüstenberg 2008, 23).

 

본회퍼에게 신학과 철학의 혼합은 있을 수 없었다일단 철학은 그 자체로는 계시를 위한 자리를 가질 수 없다그러나 신학은 인간의 언어와 철학적 언의 사용을 필요로 할 수 밖에 없기에 초월주의 철학과 존재론의 언어를 사용해 변증법적인 신학과 존재론적 신학을 어느 정도 규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Bonhoeffer 1996, 76). 본회퍼는 철학적 주장들이 계시와의 만남에서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고계시 이해에 봉사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이후 그는 1930-1931년 뉴욕의 유니언 신학교에 머물면서 미국의 철학자들(듀이페리러셀)을 접하게 되는데특히 윌리엄 제임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본회퍼는종교 경험의 다양성을 읽고 난 이후 실재의 외부에 초월적인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나중에 고백하기도 했다제임스의 논의를 따라서만약 종교가 진리라면 그것은 삶 속에서 의미를 지녀야 한다그러나 만약 삶 속에서 의미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종교는 거짓이다이러한 실용주의 세계관은 이후에 그의 신학에 큰 영향을 미치고 딜타이의 철학으로 이어진다(Wüstenberg 2008, 27-28).

 

1920년대 본회퍼를 지배했던 철학이 칸트였다면, 1930년대는 윌리엄 제임스라고 할 수 있고, 1940년대는 니체와 딜타이였다고 할 수 있다본회퍼는 딜타이를 읽으면서초기에 바르트의 영향으로 종교에 대항하는 계시 위주의 사고를 더 이상 하지 않고보다 근본적으로 종교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감옥에서 본회퍼는 딜타이의 생철학과 니체의 철학에 심취해 있었고이들의 철학을 자신의 신학에 녹여내려고 했다윤리학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현실 개념 속에는 딜타이의 현실 이해가 녹아 있고저항과 복종에는 생철학에 대한 대응개념으로 “삶의 신학”(life theology)을 자세히 기술한다.

 

Bonhoeffer, Act and Being, Fortress Press, 1996.

Eberhard Bethge, Dietrich Bonhoeffer: A Biography, Fortress Press, 2000.

Ralf K. Wüstenberg, Bonhoeffer and Beyond: Promoting a Dialogue Between Religion and Politics, Peter Lang,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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