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절한/불충분한 인용에 대하여.

ㅡ. 부적절한/불충분한 인용에 대하여.

한병철 교수는 <피로사회>라는 책에서 현대사회의 성과주의에 대하여 대가(푸코, 아감벤, 아렌트)들의 이론을 비판하며 현대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냉전, 면역학, 규율사회 등 부정성(적대성)을 바탕으로 한 과거의 패러다임은 현대에 와서 적과 동지, 내부와 외부의 부정성(적대성)이 제거되고, 오히려 긍정성(자기과잉)이 지배하는 성과 사회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새로운 폭력은 면약학적 타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경색으로 이어지는 내재성의 테러이므로, 소진증후군은 더이상 타율적인 '복종적 주체'가 아니라 주체적인 '성과주체' 안에서 일어난다. 따라서, 피로사회는 폭력으로 돌변한 자유(강제하는 자유, 자유로운 강제) 속에 몸을 내맡긴채 자기착취로 치닫는 서글픈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 심취하기 이전에 한가지 유념해야 할 사안도 있다. 아래 공유글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부적절한 인용'에 대해 비판적으로 살피지 못한채, 그대로 휩쓸려 동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피로사회>가 이례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어 수십만부가 팔려나간 이유에는 대가들의 주장을 과감하게 공격하면서(즈려밟으며?!) 자신의 주장을 피력했고, 그것이 한병철교수 자신과 <피로사회>의 주장을 돋보이게 만든 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인용하는 철학자들이나 사회학자들의 글에 대한 편협한 이해가 도드라진다. 적어도 어제 다룬 부분에서만, 에스포지토의 면역학에 대한 이해나 푸코의 규율사회 이후 생명정치에 대한 이해가 진전되어 있지 않다. 인용하되 자신의 글쓰기를 위해 그들의 주장의 이후 논의(오히려 이 부분들이 그들의 신자유주의 이해의 핵심인데도)를 생략하고 있다." -아래 공유 비판글 인용-

한병철은 푸코의 '규율사회'를 인용하며 '과잉 주체'에 대한 논리를 펼치느라, 정작 푸코가 정말 말하고자 했던 '권력의 문제에 숨겨진 신자유주의 통치방식 자체를 배워야한다'는 주장을 쉽게 건너뛴다. 다시말해, 자신에게 필요한 분석을 인용함을 통해 '과잉 주체'가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부적절한/불충분한 인용으로인해 시스템에 투쟁하는 '비판적 주체'가 될 수 있는 길은 차단시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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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절한 인용'에 대한 문제는 최근 신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과도 연관이 많다. 개인적으로 슐라이어마허와 불트만을 예를 들수 있는데, 학부시절에 선배들은 그들을 진리를 위협?! 이들로 소개 했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이들의 저작들을 거의 불온도서?! 취급을 했었다. 그 당시 분위기로는 슐라이어마허는 "절대 감정의 의지"를 강조한 신학자로, 불트만은 "비신화화"를 강조한 신학자로 자주 인용되면서, 초월적인 계시의 말씀을 인간적으로 환원하려고 했던 신학자 정도로 알고 넘어갔었다. 그러나 최근 1차 자료를 통해 살펴본 바에 의하면, 그당시의 이해는 한병철의 주장만큼이나 편협하거나/불충분한 인용이었다.

첫째로, 슐라이어마허를 예를 들어보면, 사람들은 흔히 그를 "절대 감정의 의지"으로 인용함으로써, 객관적인 말씀의 진리를 주관적인 감정의 체험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슐라이어마허의 1차자료를 통해 보면 그가 소위 "감정"이라고 하는 낭만주의적 해석으로 진리를 환원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종교가 신물이 난 시대에 종교를 위해 슐라이어마허는 그들의 언어(근대의 언어)로 변증해야 할 이야기가 있었다. 종교가 철학적 사변(관념론적, 심미학적)으로 편협하고 악의적이고, 박해에 걸신이 들린 것처럼 만든 것은 '종교'가 아니라 종교에 대한 반성이 '형이상학을 둘러싼 논쟁'이라는 점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종교'는 사변도, 실천도 아니었고, 예술도, 학문도 아니었다. 그에게 '종교'는 무한한 존재에 대한 감수성과 영원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절대적 감수성이었다.

"종교의 본질은 사유도 행위도 아니고, 직관과 느낌이다. 종교는 삼라만상을 직관하고자 하고, 자신의 표현과 행위 안에서 삼라만상을 경건하게 귀기울여 듣고자 하며, 어린아이다운 수동성 안에서 삼라만상의 직접적인 감응력들에 사로잡히고 또 그것들로 가득 채워지고자 하는 것이다." -슐라이어마허, 종교론 50-

슐라이어마허는 '종교'의 본래적 성격을 '지식'이나 '실천'의 층위와는 구별하고, 오히려 '진정한 근원'으로 바라보았다. 그가 경견주의의 본질이 '지식'이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는,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있는 존재의 의식'이라고 했던 이유도 낭만주의적 단순 감정이라기보다는 본질직관의 회복을 강조하려는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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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불트만의 예를 들어보면, 사람들은 흔히 그를 "비신화화"로 인용함으로써, 성서의 신화론적인 세계관을 과학적 세계관으로 바꾸거나, 혹은 현대인에게 맞게 합리적 진술로 바꾸어 놓았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불트만의 1차자료를 통해 보면 '비신화화'의 목적은 현대인의 구미에 맞게 성서를 적당히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으로 만들어 보려는 것이 아니었다.

"신화의 실제 목적은 객관적인 세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인간의 자기 이해를 표현하는 것이다. 신화를 우주론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인류학적으로, 그리고 좀 더 나은 방법은 실존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있다"-불트만, 신약성서와 신화. 182-

그의 목적은 신약성경의 신화들을 특별히, 실존적으로 해석하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현대인들이 성서의 전근대적인 세계관과 신화적 개념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핑계로 성서를 외면하는 것에 대해, 신화론적인 세계관과 신화들을 비신화화함으로서 그 밑에 놓여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노출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에게 신약의 신화론적 사고는 독특한 것이 아니고, 그것은 단지 전-과학적인 우주관(그리스 시대의 모든 종교들이 공유한 세계관)일 뿐이라고 여겨졌고, 신화론적 개념의 사용은 해석학적 방법론(비신화화)을 통해 이해될수 있다고 생각했다.

불트만에게 해석학은 주해의 기술이었다. 해석자가 마주하는 텍스트는 그 텍스트 속에 과거에 존재했던 실존을 담는다. 따라서 실존을 고민하는 해석자는 주해를 통해, 삶의 연관을 보며, 보편적  실존해석을 찾을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비신화화(실존적 해석)의 본의는 당시 현대인들에게 진부한 세계관이라는 잘못된 걸림돌을 제거하고, 참된 걸림돌을 드러냄으로서, 복음서의 참된 '사건'을 분명하게 마주치게 하는데 있었다.

물론, 슐라이어마허와 불트만의 주장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거나 유의해야할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의 "맥락"과 "강조점"에 대한 본의를 놓쳐버린채, 나의 주장의 도구적 '인용'으로 부적절/불충분하게 인용될 수 있음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용의 대상이 대가라면 더욱이 말이다. (슐라이마허의 평가가 어떠하든 그로부터 시작된 근대 해석학은, 딜타이를 거쳐, 가다머에 와서 확립되는 등 해석학의 시초가 되어 오늘날까지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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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공부를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배우는 것도 많고, 후회가 되는 것도 많다. 부적절/불충분한 인용에서도 언급했듯이, 안다고 했던 개념들이 바로잡혀져 가는 과정은 사실 혼란을 동반한다. 기존의 틀 안에서 적당히, 편안하게 생각하려는 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그리스도교>라는 책을 통해서도 개신교 틀 밖의 그리스도교 역사에 터한 가톨릭과 정교회의 유구한 역사에 놀랐고, <신비사상의 기원>이라는 책을 통해 교부들의 통찰안에는 신비신학과 교의신학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으나, 헬레니즘을 기점으로 한쪽으로 기울어 강조되어온 기독교 역사를 알게 되었다.)

어쩌면 학문적 탁월함은 단순히 엄밀성의 추구라고 말할 수 없는 '인격'과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피로사회>를 통해 얻은 또 다른 교훈은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적절/불충분한 '인용'은 언젠간 부적절/불충분한 '연구자'라는 평가로 되돌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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