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큉, 그리스도교 (2)

 
한스큉, 그리스도교 (2)
  
2부.  역사. 

다시 한번 말해두자,분석의 특징으로는 첫째, 그리스도교에 대해 종파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종파를 초월한 일치운동적 관점을 제공한다. 둘째, 중대한 정신사적, 세계사적 교류에 대해 유럽중심 시각이 아니라 보편사적 시각을 애쓰려 한다. 셋째, 역사에 대해 과거 지향적 고찰이 아니라, 비판적 관점에서 현재와 관련시키는 고찰을 추구한다.

<1. 원그리스도교의 유다계 묵시문학 패러다임.>

초창기 그리스도계의 중심지와 모교회는 로마가 아니라 예루살렘이었다. 유다교의 본류 속에서 시작된 초창기 그리스도교는 유다교 세계와 외적 일치를 보존하며 유다교의 한 분파로 여겨졌다. 첫 그리스도인 공동체로서 유다계 그리스도교 패러다임을 정리하자면 크게 두가지이다. 첫째,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메시아로서 오신 예수에 대한 믿음과 모세의 의식율법 준수를 결합시켰던 그리스도교 형태의 화신이었다. 그들은 율법 준수로 예수 추종을 실천하고자 했다. 둘째, 예수를 추종했던 유다인들이 다른 많은 유다인들과 공유하였던 묵시문학의 종말론적 지평이다. 율법준수의 고집과 메시야예수의 추종이 공존했던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훗날 이방계 그리스도교인들에게도, 유다교 본류로부터도 이단으로 낙인찍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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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예수가 처형된 뒤 달아났다가 압도적인 부활 체험으로 인해 다시 모인 제자들의 무리는 아람어를 사용하는 남녀 유다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자신들을 유다교의 한 집단으로 이해하고 주위의 유다교 세계와 외적 일치를 보존하고 있었던 그들은, 처음에는 유다교의 한 "분파"로 여겨졌다. 오늘날 우리는 그들을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라 부른다. 이 첫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모든 유다인들과 마찬가지로, 1)한 분 하느님께 대한 유다교 신앙을 간직했고, 2)거룩한 문서들을 굳게 받아들였으며, 3)율법을 준수했고, 4)성전예배에 참여하고 희생제사를 드리고 똑같은 시편과 찬가를 노래했다.(p. 113)

ii.) 당시 팔레스티나에 살고 있던 이 사람들은, 그리스인들과는 달리, 하늘과 땅의현상들에 관한 지식인 물리학에도,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본원리들에 관한 지식인 형이상학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관심을 갖고 있던 것은 미래였다:그것도 "아래로부터", 인간과 세계로부터 자연적으로 전개될 미래가 아니라, "위로부터", 하느님으로부터 올 미래였다. 또한 마카베오 왕조의 타락과 멸망에 크게 낙담한 사람들은 이미 기원전 2세기에 구원은 현세의 다윗혈통 "메시아"(기름부음받은 자)에게서는 올 수가 없고, 하느님이 파견하신 자(천상적 메시아, 선재하는 초월적 심판자요 구원자인 '인자')에 의해 곧장 천상으로부터만 올 수 있다는 확신을 지니기에 이르렀다.그리스도인 첫 세대의 이러한 종말 대망은 두 가지 방식으로 성취된 것처럼 보였으니, 곧 예수의 부활(고양)과 성령 체험이 그것이다.(p.110-111)

iii.) 유다계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율법 준수 고집 때문에 새로운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의 대교회와 단절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예수를 그렇게도 많은 유다인들이 고대하던 모세와 같은 예언자이자 메시아로 믿었기 때문에 유다교 본류로부터 떨어져 나갔다.그들은 원칙적으로 율법과 할례를 지켰고, 유다교적으로 꼴지어진 그리스도론을 주장했는데, 메시아 신앙과 율법 준수의 분명한 한계를 보여주는 이 그리스도론은 나중에야 이단의 낙인이 찍혔다. 
 유다계 그리스도교의 그리스도론을 보통 일곱 유형으로 나누어 왓지만, 이것들이 서로 상충되는 것은 아니다. "아래로부터의"그리스도론 세 가지 : 제왕 그리스도론("다윗의 자손"예수), 예언자 그리스도론("새로운 모세"예수"), 제관 그리스도론("대제관"예수),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 네가지 :"인자"그리스도론, 모든 천사 위의 존재 그리스도론, "하느님 아들" 그리스도론, "하느님 말씀"그리스도론 , 이 모든 표상이 뚜렷한 유다교 배경을 지니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그리스도론은 예수의 유다인 제자들의 관점에 입각하여 극히 소박하게 "아래로부터" 시작되었다.(p.15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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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계 묵시문학 패러다임 - 흥미롭게 생각하게 된 점. 

1) 제자들의 충돌 : 율법준수와 메시야예수가 공존했던 최초의 유다계 그리스도인은 이제 이방계 그리스도인들과도 갈등을 격어야 했다. 내부적으로는 성전과 율법에 충실해야 한다는 집단과 성전과 율법에 비판적이어야 한다는 집단이 형성되었고, 외부적으로는 율법에서 자유해야 한다는 집단이 형성되었다. i. '베드로'는 유다계 그리스리도인이 엄격한 율법준수를 준수하는 설교를 하면서도, 동시에 이방계 그리스도인을 선교하는 바울에 대해 관용적인 입장을 취했다. ii. 그러나 '야고보'는 율법에서 해방된 이방인 선교의 대표자 바울을 용인하고, 메시아 운동의 지도자로서 정치적 혼란을 야기한다하여 바리새인들로 부터 박해를 받았다. 그를 향한 박해와 유다교 회당으로부터 축출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유다교 회당 간의 결정적 분열로 귀결되었다. iii. 유다계와 이방계가 섞여 있던 헬라-유다계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있었던 '요한'은 회당에서의 예수공동체에 대한 배척때문에 회당을 거슬러 배척으로 맞설수 밖에 없었다. 요한 공동체는 양립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예수에게 온전히 집중된, 새 시대의 정신적, 영적으로 심화된 새로운 공동체를 자처했다. 

2) 그리스도론 충돌 : 그리스도론적 언명들은 정통 유다교에게는 명백한 신성모독이었다. 여기서 관건이 되는 것은 율법과의 이런저런 충돌 따위가 아니라, 예수와 하느님의 동등화였다. 유다교의 이해지평 안에서 근원적으로 그리스도론의 충돌은 삼위일체론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여전히 하느님 중심성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i. 요한은 예수가 하느님보다 '선재'하는가에 대한 논쟁을 예수는 선재가 아니라 '일치'적 관점으로 해석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다. 그는 영원으로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시는 말씀으로 활동, 행위, 계시로 일치하고 계신다고 하였다. 요한이 겨낭한 것은 예수의 신성, 본성의 형이상학적 개념화가 아니라 성육신사건에 대한 신앙고백적 선포였다. 

 

ii. 바울 또한 예수의 '선재' 보다 하느님의 중심성에 바탕을 둔다. 바울의 사고 도식은 아버지, 아들, 영의 동등화가 아니라, 하느님을 인간에게 향하게 함에 있었다.  바울은 하느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안으로 구원을 이루신다고 생각했다. 
이를 종합해 볼때, 중요한 것은 하느님, 예수, 거룩한 영에 대한 믿음은 있지만 세 위격 안에 하느님에 대한 가르침(셋이면서 하나이신 하느님, 삼중신등) 가르침은 없었다. 그들의 시대에서 중요했던 것은 세 존재가 본체적으로 어떻게 하나일 수 있는가를 꿰뚫어보는 신비가 아니었다. 유다와 이방 내부 분열 사이에서 어떻게 예수와 하나님 자신의 관계를 맞갖게 진술해야 하는가라는 '그리스도론적 문제'가 최대 관심사 였다. 철저하게 구원론적이고 그리스도론적 진술이 진정 중요했다. (참고로 삼위일체론은 유다계 묵시문학 패러다임으로부터 헬레니즘 고대교회 패러다임의 거대한 전환 사이의에서 나타난 산물이다)

3) 교부들이 이단이다?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이단화 시키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당시 교부들은 아들을 아버지께 '종속'하는 것을 너무나 자명한 것으로 가르쳤다. 이 가르침은 훗날 니케아공의회(325)의 입장에서 볼 때는 아버지와 아들을 나란히 동일본질로 놓치 않는 다는 측면에 비추어보면 이단으로 간주될 수 있다. 만일 신약성서 대신 니케아 공의회를 척도로만 삼는다면, 처음 몇 세기 고대교회의 모습을 누가 정통신앙을 지녔다고 할 수 있을까. 역사에 대한해석은 일단 그 기준점을 뒤에서 앞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를 그 당시 자체로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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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인들이 또다시 로마와 전쟁을 벌여, 135년 예루살렘은 철저히 파괴되었으며 모든 유다인들이 추방되고 예루살렘은 엘리아 카피톨리나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그와 함께 예루살렘의 유다계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그 공동체가 어린 그리스도교계에서 차지하고 있던 우뚝한 지위도 종말에 이르렀다. 그 공동체의 영광은 이제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로 넘어갔다 .(p147)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의 중심지였던 대도시 안티오키아(안디옥)는 보편적 헬레니즘의 문화권에 있었다. 다음시간에는 이방인 선교의 대표적 인물인 사도 바울로를 중심으로 헬레니즘의 사회문화적 패러다임의 전화를 살펴보도록 하자.. 

다음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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