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접근할 수 없는 신, 그리고 접근 가능한 타자.


레비나스의 이야기다.

"주체-대상 관계로 이끄는 비인격적 관계 속에서는 신에 접근 할 수 없다. 보이지 않지만 인격적인 신은 인간의 모든 현전 바깥에서 접근되는 것도 아니다. 이상적인 것은 '최상급으로 존재하는 신'이나 모든 '대상적인 것의 승화로서의 신'이 아니다. 또한 사랑의 고독 속에서 생겨나는 '너로서의 신의 승화'를 일컫는 것도 아니다. 신에게로 이끄는 돌파구가 생산되기 위해서는 정의의 작업, 즉 '대면의 올곧음'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형이상학은 사회적 관계가 행해지는 곳에서, 오직 우리가 사람들과 맺는 관계 속에서 행해진다. 즉 인간들과 분리되어서는 '신'에 대한 어떠한 '인식'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타인'이 곧 형이상학적 진리의 장소 그 자체이고, 신과 맺는 나의 관계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더 나아가 '타인'은 단순히 매개자 역할을 행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타인'을 신의 육화라고 일컫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는 타인의 얼굴을 통해서 '신이 계시되는 높이'의 현현을 마주할 수 있은 따름이다. 그러니 나는 주장한다. 윤리로부터 얻어진 의미작용없이 행해지는 신학적 개념들은 공허하고, 남는건 신성한것을 위반하는 형식적인 틀뿐이라고."

ㅡ. 레비나스. 전체성과 무한, 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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