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쉬히테와 틈

ㅡ. 게쉬히테와 틈

독일어는 '역사'를 두 개의 단어로 표기합니다. 히스토리와 게쉬히테. 먼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역사라는 영어 단어 'history'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히스토리아(historia)'에서 왔다. 어원의 의미하는 바는 '조사', '탐구'라는 뜻을 지니고 있기에, 역사는 한마디로 '탐구에서 얻어진 지식'을 의미했다.
반면에 게쉬히테(Geschichite)라는 말은 '발생한다', '일어난다'는 의미를 가진 동사 '게쉐헨(geschehen)'에서 유래한 말로 '그 같은 일이나 사건에 관한 지식과 설명'을 의미한다. 그런데 게쉬히테(Geschichite)로 인한 구분은 역사의 의미를 단순하고 인과적 이해방식이 아닌 철학적 해석과 의미를 지닌 영역으로 승화시킨다. 정리하자면, 과거의 발생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탐구한 것이 히스토리에(Historie)라 한다면, 그것에 대한 실존적인 이해와 해석을 담아 재구성 한 것을 게쉬히테(Geschichite)라고 구분함으로써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의미를 깊게 사유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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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사실주의로만 접근하면, 역사지식에 동원되는 주관적 이해와 재구성적 측면을 놓친다. 복음서 기자들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와 재구성에 미친, 관점,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다.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은 성령의 지도 아래서 자신들이 인식한 역사와 그것들의 의미를 서술하였다. 그렇기에 성서기록자들은 성령의 초월적이고 내재적인 활동으로 인해 인간의 인식능력의 한계 속에서도, 초자연적, 초월적으로 역사하시는 역설적 차원의 의미를 담아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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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르트는 그의 책 '교회교의학- 화해의 사건'에서 성육신의 부활은 '히스토리에'가 아니라 '게쉬히테'라고 명명했다. 그 말은 의미는 성육신의 사건이 '실제로 안 일어난 사건'이라는 뜻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되, 역사의 다른 차원에서 발생된 사건' 곧 히스토리에의 차원이 아니라, 게쉬히테(Geschichite)의 차원에서 발생된 사건으로 보았다. 영원(초월)이 시간(내재)를 뚫고, 이 세계 속에 유일회적으로 성취된 사건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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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대한 구분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시간에 대한, 차원에 대한 구분이 우리의 신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역설에 대한 이해이다. 시간 안의 세계에 대한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시간을 뚫고 들어오시는 희망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 영원은 시간에 기대어 있고, 초월은 이미 내재를 포함하고 있다. 성서와 그 역사는 단순히 문자를 보는 것이 아니며, 사실을 그저 나열해 놓은 것이 아니다. 인과적 방식이 아닌 차원이 다른 세계의 도래다. 표면적 문자적 안목을 벗어나 전체적이고 심층적 차원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본문은 그 안의 세계관에 매몰되지 않고 잉여가 있는 밖의 실재에 기대고 있으므로 초월성을 담지하며, 동시에 모순과 역설을 유지한다.  

- 태초에 관계성이 있었다.(인과가 아니라 차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관계망 안으로 초대를 받았다. 전혀 다른차원은 '구멍, 틈'을 통해 들어온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열린 구멍(결핍)들을 메꾸는 방식이 아니라 성령에게 내어주는 방식으로 들어온다. 그럴 때 성령이 우리를 통해 말씀하신다. 내어 놓은 구멍(틈)사이로 성령의 바람이 불어올 때, 영원으로부터 온 잠재성의 생기가 '동일성의 세계관'을 깨고 새창조의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정직하게 마음의 결을 비우고, 성령으로 내어 드릴때, 초월의 세계에서 이 작은 나의 내제된 세계를 채우고도 남을 만한 충만한 신성의 에너지(잉여)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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