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큉, 그리스도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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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종교개혁의 개신교 복음 패러다임
-i)루터

11세기 그레고리우스 개혁과 로마 가톨릭 패러다임(4)의 대두 이후, 루터의 종교개혁만큼 서방 그리스도계에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 중대한 사건은 없었다. 마르틴 루터는 교회와 신학, 아니 그리스도교 전체의 또 하나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오며, 16세기에 새 시대의 개막을 선포했다. 명실공히 종교개혁이라는 개념은 루터의 이름이 결부된 명백한 시대개념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자기비판적으로 유념해야할 물음이 한가지 있다.

인물이 역사를 만드는가 아니면 역사가 인물을 만드는가? 다시말해,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인물들의 상은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변화하고, 또 흔히는 시류에 영합하게 되는데, 바로 루터의 경우가 그러한 점이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오래 전부터 너무나 많은 일들이 기존하는 총체적 구조를 철저한 변혁에로 몰아대고 있었다 p.657. 루터가 열망하던 개혁의 내용들 가운데 전적으로 새로운 것은 거의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무르익어, 마침내 때가 도래했고, 그 열망들을 함께 아우르고, 말을 통해 전달하고, 제 몸으로 체현할 종교적 천재가 필요했다. 그런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 바로 루터였다.)

그러므로, 루터는 그저 전기적으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루터의 활동과 저작의 중심에 입각하여, 역사적, 신학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스큉은 특별히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법칙성을 마르틴 루터라는 인물 안에 체현된 패러다임 전환의 본보기로 간주하면서, 종교개혁을 그저 사소한 '방향 수정'이 아니라 완전한 '방향 전환'을 일으킨 사건, 즉 그리스도교에 대한 새로운 총제적 이해의 전환사건으로 설명하고 있다.

*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의 전환' : 새로운 가설과 이론은 이제까지 사용된 설명모델이나 모형이 새로운 것으로 대체됨으로써 생겨난다. 진화적이기보다는 혁명적인 ‘모형변경’을 통해 생겨난다. ‘모형’은 주도적 이론이나 이념이 아니다. 원리나 사상적 방향도 아니다. 그것은 “주어진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지닌 신념, 가치, 그리고 기법들의 전체적 성향” 이다. 토마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밝힌 이 이론은 현대신학이 서로 다른 신학들의 표면을 뚫고, 공통적인 지반에 도달하기 위해서 보다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할 질문이 무엇일지에 대해 폭넓은 문제제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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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환의 출발점으로서의 위기 : 루터의 근본관심

루터의 근본 관심사는 단지 교회의 이루 말할 수 없는 폐해, 특히 대사 장사에 맞선 투쟁,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교황권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피상적인 이해이다. 루터 자신의 종교개혁적 열정과 엄청난 역사적 폭발력은 어디까지나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로 돌아가게 하고자' 한 데서 출발하였다.
루터는 본디 번민하는 수도자로서 개인적인 양심의 고뇌를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의 의인론은 개인적인 영혼의 평화 이상의 것을 겨냥하고 있었다. 의인에 관한 루터의 신학은 복음 정신에 터한 교회의 개혁에 대한 공적인 촉구였거니와, 이 개혁은 이러저러한 교리의 새로운 정식화가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교회의 '쇄신'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황직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은 피해갈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교회쇄신으로서의 그의 비판은 개인으로서의 '교황'이라기보다는 로마가 강요하고, 조장하던, 복음과 상충되는 '제도적 관행과 구조들' 이었다. 그러므로 '올바른 구원의 길과 복음에 대한 실천적 성찰'이 교회 안에 권위와 교황 및 공의회의 무류성을 둘러싼 본격적인 싸움으로 급선회하게 된 주된 책임은 루터가 아니라 '로마'에게 있었다. 결과적으로 모든 것은 결국 로마가 철저한 개혁 요구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있었지만, 로마는 방향전환의 어떠한 조짐도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루터는 보름스 제국의회(1521)에서 유죄판결을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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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리스도교의 원천적 복음 : 카톨릭 신자이자 종교개혁가로서 루터

전제없는 학문은 없다. 단절되지 않는 전통의 연계성(가톨릭)이 루터의 의인관 형성에 있어 중요한, 부분적으로 서로 얽혀 있는 전제였다. 간략히 언급하자면

1)첫째로, 루터가 수도원에서 마주친 가톨릭 신심(완덕을 추구하는 수도자의 길을 쫓다가 불안과 회의에 휩싸인 루터에게 수도원 장상 요한네스 폰 슈타우피츠는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자신의 구원이 예정되어 있는지를 놓고 피 말리며 골똘히 생각하지 말고, 성서와 하느님의 구원의지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분의 모습을 보라") ,
2)둘째로, 중세 신비주의.(특별히, 신비주의자 타울러를 가장 위대한 신학자의 한사람으로 칭송한점과 신비주의 저작 『독일 신학』을 성경과 어거스틴을 제외하고 이 책만큼 많이 배우고, 또 배우고 싶었던 것은 나에게 없었다는 고백) ',
3)셋째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아우구스티누스가 펠라기우스를 반대하여 전개 발전시킨 예정론과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에 대해 루터는 보다 인격적인 이해를 추구했다),
4)끝으로 오컴의 교설의 형태 안의 유명론(루터는 의인론에서 오컴학파의 펠라기우스 주의를 극력히 배척하며 변증한다는 점에서 바울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의존성만으로 고찰해서는 안됨을 시사)이다.

이렇듯, 루터는 가톨릭 전통 안에 뿌리 박고 있었거니와, 단순히 중세 가톨릭 의화관과 루터의 의인관을 통채로 단절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중세의 의화관이 아예 비복음적인 것이 아니며, 또한 루터의 의인관이 아예 비카톨릭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통점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종교개혁가로서 루터는 어떠한 강조점로 평가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2차 바티칸 이후 가톨릭 신학도 근본적이고, 항구한 구속력을 지니는 있는 최고의 척도, 곧 '성서-복음-그리스도교의 원천적 소식'이다. 신스콜라적 교과서 신학, 트렌트 공의회, 전성기의 스콜라 신학, 교부신학은 부차적인 것이다. 다시말해,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어떤 교황 교령의 저러이러한 진술들에서 발견되느냐가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원천적 소식인 복음'에 터해있느냐이다.
그러나 로마는 종교개혁가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로의 복귀'를 요구했던 루터에게, "교회의 가르침에로의 복귀"를 요구했고, 루터는 권력교회의 인간중심적인 '교회 중심주의'로 변질된 중세적 형태의 그리스도교에 대해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총제적, 근본적 전향할 것을 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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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새로운 패러다임 : 교회중심주의에서 그리스도 중심주의로.

따라서 루터는 "오직 성서"를 외치며 수백년 쌓이고 쌓인 온갖 전통, 법률, 권위를 거슬러, '성서의 수위권'을 주장했고, "오직 그리스도"를 외치며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수많은 성인들과 많은 공식적 중개자들을 거슬러, '그리스도의 수위권'을 주장했으며, "오직 신앙으로만"을 외치며, 영혼의 구원을 얻기 위해 교회가 규정한 온갖 경건한 종교적 보험 행위와 인간적 행업을 거슬러, '은총과 신앙의 수위권'을 천명했다.

성서를 바탕으로 한 루터의 천명은 말씀과 신앙, 하느님의 의와 인간의 의,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직과 모든 신앙인의 보편사제직에 있어 중세패러다임를 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았는데 새로운 해석모델은 다음과 같았다.

1)하느님에 대한 새로운 이해 : 그분의 내적 본질에 관해 사변을 전개해야 하는 것(추상적인 하느님 자신)이 아니라, 그분의 은총에 인간이 의지할 수 있는 아주 구체적인(우리를 위해 계시는) 하느님.

2)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 : 자연-은총 도식안에 있는 인간이 아니라 율법과 복음, 문자와 영, 행업과 믿음, 예속과 자유의 대결안에 있는 인간.

3)교회에 대한 새로운 이해 : 관료주의적 권력,금융 기관이 아니라, 다시금 새로이 신앙인들의 공동체요 보편사제직으로서의 교회.

4)성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 : 흡사 기계적으로 '은총'을 부여하는 의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약속'과 자비로운 하느님께 대한 '신뢰'의 표지로서의 성사.

이처럼, 인습적인 교회와 신학의 파행적 발전, 그리고 이로인한 그릇된 형태에 대한 저항으로 표출된 복음에로의 복귀가 교회와 신학은 새로운 종교개혁, 즉 개신교 복음 패러다임의 출발점이었다. 루터의 새로운 복음 이해와 의인론의 새로운 의의는 신학전체를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고, 마침내 교회를 새로이 틀지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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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온갖 비연속성에도 불구하고 연속성이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수용되면, 개혁은 시간이 흘면서 전통으로 '고착화' 된다. 이것은 루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개신교의 '정통', 새로운 개신교 표준신학이 생겨났거니와, 성서와 루터 저작의 자구를 '맹신'했고, 로마 체제가 그랬듯이 이탈자와 이단자들은 배척되었고, 배척은 흔히 단죄로, 논쟁은 파문으로 고착화 되었다.

종교개혁에 있어 한가지 깊이 생각해봐야할 점은 바로 온갖 비연속성을 무릅쓰더라도 숨겨져 있는 '근본적인 연속성' 이 있다는 점이다. 루터는 어디까지나 그리스도교의 원천적 형태(form)을 다시 찾고자 한 종교개혁가(Re-formator)였다. 
모형교체는 전적인 단절이 아니다. 불연속성이 있으면서도 기본적인 연속성은 있다.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세계상으로 나뉘어지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이론적 불연속성들이 보다 깊은 방법론적 연속성으로 은폐되어 있다.)

특별히 신학에서 이 연속성의 문제는 2천년 동안 삶의 직접적 문제에서 전승되어 왔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깊이의 성격을 지닌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자연과학처럼 현재와 미래에만 관련되어 있지도 않고, 역사과학처럼 전통에만 관련되어 있지도 않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아주 특수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 사건에 대한 근원적 ‘기원’과 관련되어 있다.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철저한 모형적 변혁은 언제나 복음에 근거해서, 복음을 위해서 일어날 뿐이지, 복음에 반대해서 일어날 수는 없다. 복음자체가 불연속의 근거일 뿐 아니라 연속성의 근거라는 점은 신학의 모형변경이 그리스도교적 사신의 항구성에 근거하여 일어남을 말해주고 있다. (과연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비역사적-신화적 진리나, 초역사적-철학적 진리가 아니라 극히 역사적이고 원천적인 그리스도교 진리이다.)

'복음 자체'가 신학의 위기를 직접 불러일으켰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나아가도록 충동하는, 패러다임의 비연속성의 바탕으로서 복음, 그리스도의 항구적 바탕증언이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이 원증언은 신학적 혁명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창출되더라도, 옛 패러다임의 총체적 해체나 변개를 초래하지 않는 이유가 된다. 요컨대 옛 패러다임의 구성요소들은 원-바탕증언과 충돌하지 않는 한 원친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 안에 수용될 수 있다. (오리게네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경우와 마찬자리고, 루터도 혁명이 총체적 단절로 귀결되지 않고, 오히려 신학의 선배들과 공통성을 보존하게끔 처음부터 배려되어 있다)

따라서, 종교개혁은 개신교의 비관적 역사관에서 생각하는 것과 달리, 복음 자체의 재발견이 아니고, 카톨릭의 유기적 역사관에서 생각하는 것과 달리, 교회의 가르침으로부터 엄청난 이단적 이탈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한스큉은 그리스도교에서 새 시대를 여는 패러다임의 전환은 신학, 교회, 사회의 총제적 구조를 변경시켰으나, 신앙의 변화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온갖 급진적 변혁들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신앙의 '본질'은 오롯이 보존되었다는 것이 그의 논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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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볼 점 : 종교개혁은 인습적인 로마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그리스도교의 참된 형태로부터의 이반을 의미했지만, 복음 정신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교 본디 형태의 복원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교의 중세 패러다임을 기꺼이 포기했다. 왜냐하면 복음 자체는 개연적 비연속성의 형태뿐만 아니라 필연적 연속의 바탕 속에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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