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으로서의 하나님

#. 정신으로서의 하나님 이 오밤에 적지않은 충격이다. 결국 헤겔의 신 존재증명에 대한 이야기 때문인데, 최근 칸트의 신존재증명 비판을 발제해서 그런지 더욱 와닿는 부분이 있었다. 칸트는 신존재증명의 3대비판(존재론적, 우주론적, 목적론적비판)을 비판하지만 그 이야기의 골자는 존재론적 비판의 툴이 나머지 둘에 모두 적용된다는 점에서 그 비판의 핵심은 '존재론적 비판'이다. 그리고 존재론적 비판의 핵심은 '현존'은 결코 '개념'의 추론에 의해 추론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촘촘하게 논증할 것이 많겠으나 결국 칸트는 이러한 비판을 통해 이론이성의 영역에서는 더이상 '신존재'에 대해 말할 수 없고, 말해야만 한다면 그것은 실천이성의 영역에서 신을 요청할 따름이다로 칸트의 주장을 정돈될 수 있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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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부정

ㅡ. 자기부정(self-denial)과 자기거부(self-rejection) 자기부정은 '자기상실'이나 '자기거부'가 아니다. 초월의 영이신 성령이 오시면 '자기'의 세계는 부정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방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그런의미에서 자기-부정은 자기를 포함하면서도 갇힌(갇힌 사유로부터, 갇힌 체계로부터, 갇힌 거짓세계관으로부터의) '자기'를 넘어서는 진정한 자유의 선언이다. 반면,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자기부정은 어떻게 설교되어지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제자도를 이야기 하면서도, 그 제자도의 정신은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기'를 극복되어야할 대상으로만 치부한 결과로 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십자가의 자기부정은 부활의 생명을 함의한다. 그것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피조성의 본향으로서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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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망과 도취

열망과 도취, 그 사로잡힌다는 경험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궁금하다. 누군가는 이것을 몰입정도로 바라볼지 모르나, 아는이는 이것이 살아야 할 이유일만큼 급진적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자기안의 뜨거운 불덩이을 손으로 다스리는 것마냥 위험하고, 범람하는 감정일까? 끌려쏠려가 버린적이 없기에 황홀감의 높이도, 잃어버린적이 없어보았기에 허망함의 깊이도 무엇인지 모르겠다. 더듬거리며 추측할 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서글픈 건 체험없이 반성하고, 도취없이 균형을 이야기하고 있는 무정한 보고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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