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12. 08:49

성도의 교제와 나다공동체

#. 성도의 교제와 나다공동체. 읽었다. 아니 읽어 보았다. 때론 이해가 되지 않아도, 때론 선문답같이 느껴지고, 구조적 난해함에 길을 잃더라도 멈추지 않고 끙끙거리며 읽어 나갔다. 마지막장을 읽을 때쯤, 어렴풋히 그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단어들을 통해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들리는 듯했다. 종말론적이고 시원적인 공동체의 모습이 저 너머의 '피안'이 아니라 현실 한복판이라는 '차안'의 중심으로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지 우리의 교회가 보여줘야 한다는 그의 사자후가 들리는듯 했다. 그리고 어설프게나마 왜 이책의 부제가 '교회 사회학'에 대한 교의학적 연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유럽의 국가사회주의가 낳을 '전체주의'와 미국의 자유민주주의가 낳은 '개인주의' 사이에서 교회라는 공동체가 가야할 길은 그 양자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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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론적 현상학

축하! 드립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실재론적 현상학파들에 대한 관심을 두시고, 몸과 정신의 인식론을 더 공부한다면 성령을 거룩한 정신으로 고쳐읽고, 비종교적 기독교 이야기를 재미있게 시작 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시간 되면 서울신학대학교로 찾아오세요. 따끈한 논문한권 부탁드립니다. -전도사님보다 한참 모자라는 김성호 목사 드림^^ - 석사논문 후 피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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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8. 24. 02:34

# 석사논문을 마치며

논문을 마치며 한가지 아이러니한 감정을 느낀다. 내가 '계시'라는 주제를 잡았고, 고집했으며, 그리고 썼지만,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못한 것 같은 느낌말이다. 이래저래 눈치를 보다가, 결국 제출 전날에 아무도 터치?!할 수 없다고 소위 여겨지는 감사의 글에 이런 글을 남겼다. . … 일련의 일들을 거쳐 감추어진 하나님이 드러나신 순간이 기억이 납니다. 그날 이후, ‘계시’라는 주제는 저에게 연구해야 할 주제 이전에 풀어가야 할 실존적인 숙제였고, 신학공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발걸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까닭을 물으며 쫓아갔던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계시’라는 주제에 천착한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질문을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계시를 인식한다고 말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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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 인격 (퍼온글)

먼저, 본회퍼가 인격에 대한 철학적 이해를 시도하려는 것은 이러한 철학적 인격이해를 통하여 기독교적 인격개념이 더욱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본회퍼가 인격에 대한 철학 적 이해를 다룸에 있어서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것이 있는데, 즉 데카르트와 칸트를 중심 으로 한 인식론이 그것이다. 본회퍼는 이러한 인식론은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주목하였다. 이러한 인식론적 입장에서의 인격이해는 곧 주관적, 내재적 인격이해라 규정하고 있는데, 그것은 인식론의 근거인 Cogito가 곧 사고의 주관성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적 인격이해는 구체적이며, 공동체를 함축하고 있는 인격으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인격에 대한 주관적 이해는 곧 루터 의 corcurv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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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내 안에 파고들지 않는 정보는 앎이 아니며, 낡은 나를 넘어뜨리는 다른 나, 타자로서의 나로 변화시키지 않는 만남은 체험이 아니다. ㅡ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님 - 은유, 『쓰기의 말들』 (서울: 유유, 2017),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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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이야기

ㅡ. 성경과 이야기. 성경의 권위는 한 공동체가 존재하기 때문에 쉽게 이해된다. 그 공동체는 자신의 삶이 이스라엘의 부르심과 예수님의 삶을 통하여 그의 창조 세계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신실하게 기억하는 것에 달려 있음을 아는 공동체이다. 동시에 성경은 그리스도인에게 권위적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 안에서 그들이 진리를 알게 된 그 전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도덕적 문제와 관련하여 성경을 바라보는데, 성경은 그들의 공동적, 개인적 삶의 지속적인 안내자인 하나님의 이야기들을 기억하도록 그들을 돕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ㅡ. 스탠리하우어워스. Community of Character, 53, 66 저자는 설화(이야기)의 특징에 주목한다. 우리는 성경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에 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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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화는 기도의 적이다

추상화는 기도의 적이다. 아름다운 개념들은 기도의 적이다. 세련된 사고는 기도의 적이다. 바위에 발가락이 부딪히고, 폭풍우에 흠뻑젖고, 원수에게서 뺨을 맞을 때 진정한 기도가 시작된다. ㅡ.유진피터슨, 하나님께 응답하는 기도,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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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품은 모든 꿈의 배후에, 이면에, 중심에는 도대체 무엇이 자리잡고 있는가. 당신에게는 당신의 꿈을 좇고, 찾고, 살아갈 하나의 삶(one life) 밖에 없다. 만약 당신의 온 삶으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 왜 그것을 하고 싶은가? 무엇 때문에 그런 삶에 매력을 느끼는가? 당신에게는 온 삶(one life)이 있다. 당신이 행하도록 부름받은 일을 하라. 꿈을 좇을 때 당신은 그 꿈을 살기 시작하고, 꿈꾸기를 그칠 때 당신은 죽어가기 시작한다. 궁극적인 꿈을 찾을 때, 삶의 다른 모든 조각은 마침내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우리의 온 삶은 그 꿈에 바치도록 지으심을 받았다.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신 그 일에 당신의 삶 전부를 바치라. ㅡ스캇 맥나이트, 원라이프 24-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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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잠재성의 시간

ㅡ.잠재성의 시간 원형'적'으로는 '이미' 잠재된 무형의 가치들이 단계적으로 '아직' 발현되어 있지 않았을지라도... 동일한 패턴의 시간을 새로운 희망으로 창조하시는 하나님(신적타자)과 함께 걸으며 채워가는 믿음의 길벗(세속적 타자)들은 내 삶의 근저에 언제나 도도히 흐르고 있다. 바로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억이 지금, 여기, 이 순간으로 다가올 때, 낯설음의 사건들은 더이상 '두려움'이 아니라 '신뢰'로 가득찬 사랑의 시간이 된다. 사랑과 신뢰는 잠재성을 살아있게 하는 생명에너지다. 그앞에서 불연속적 절망은 더 큰 차원으로 넘어가는 희망으로 바뀌고, 끝없이 반복되는 일상은 새로운 시각을 일으키는 차이로 이끌림을 받는다. 잠재성의 본질은 본래 없었던 것이 아니라(being) 다만 아직 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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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교회가 증언하는 진리는 이론적 추론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것은 특정한 교리의 소개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일어난 진리입니다. 그것은 그 자신의 '생활양식'을 창조합니다. 순수한 교리를 설교하는 교회라도 진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진리의 본질은 이 교회의 '생활양식'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생활양식'은 예수를 뒤따르는 것이지, 민중과 가까이 지내거나 민중과 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ㅡ. 본회퍼. 핑켄발데 신학교에서 강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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